답장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마지막으로 보낸 쪽이 상대였습니다.
그러면 그건 기다림이 아닙니다. 미룸입니다.
기다림은 공이 상대에게 넘어간 상태입니다. 내가 할 일은 다 했고 다음 차례가 저쪽입니다. 이때 정지해 있는 것은 정상입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미룸은 공이 내 손에 있는 상태입니다. 다음 차례가 나인데 안 하고 있는 것이지요. 겉모습은 똑같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상태라 헷갈립니다.
그래서 확인은 감정이 아니라 순서로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움직인 쪽이 누구였습니까.
이름을 바꿔 부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잘못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사람은 미루는 상태를 자주 기다리는 상태로 부릅니다.
대가는 나중에 옵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이 안 일어나니까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는 해석이 붙습니다. 실제로는 저쪽이 내 답을 기다리고 있는데도요. 없는 서운함이 만들어지는 경로가 대개 이쪽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내가 보내야 할 답의 무게가 커집니다. 사흘 뒤에 하면 됐을 말이 삼 주 뒤에는 못 할 말이 되지요.
지금 멈춰 있는 일이 있으시면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다음에 움직여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일에서도 같습니다. 회신을 기다린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보낸 것이 있는지부터 확인하시는 게 순서입니다.
공이 상대에게 있다고 해서 무한정 두는 게 맞지는 않습니다. 기다림에는 기한이 있어야 합니다. 기한이 없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기다림이 아니라 방치가 되니까요.
기한이 지났는데도 아무 일이 없으면 그때 공은 다시 내게 옵니다. 한 번 더 보낼지, 그만둘지를 정하는 차례가 되는 것이지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안 정하면 또 미룸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다시 보내면 조급해 보일까 봐 안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상대는 대개 내 사정을 모르지 않겠습니까. 잊었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기다림 쪽이면 할 일은 기한을 정하는 것입니다. 날짜 하나만 적어두시면 그때까지는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미룸 쪽이면 할 일은 가장 짧은 한 줄을 지금 보내는 것입니다. 완성된 답일 필요가 없습니다. 확인했고 언제까지 답하겠다는 한 줄이면 공이 넘어갑니다. 공이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진짜 기다림이 되고, 기다림에는 비용이 안 붙습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멈춰 있는 일이 있으시면 마지막 기록을 열어 확인해 보시죠. 누가 마지막으로 보냈습니까. 그 한 줄이 이름을 정합니다.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