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사정을 조목조목 설명하셨습니다. 그럴 만했다는 것도 아셨고, 저라도 그랬겠다고까지 하셨지요.
그런데 마지막에 왜 아직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해는 됐는데 납득이 안 된 상태입니다.
이해는 사정을 아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 경로가 보이면 이해는 끝납니다. 머리에서 처리되는 일이지요.
납득은 그 결과를 내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정을 아는 것과 그 결과를 안고 가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까지 내려와야 닫히지요.
그래서 이해는 됐는데 납득이 안 되는 상태가 아주 흔합니다. 이상한 게 아니라 두 층이 따로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해는 상대 쪽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설명이지요.
납득은 내 쪽 이야기입니다.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계산이 여기 들어갑니다. 상대의 사정이 아무리 타당해도 내가 손해를 본 사실은 안 없어집니다. 그러니 이해만으로는 그 손해가 처리되지 않지요.
여기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이해가 됐으니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스스로 판정하는 겁니다. 그러면 감정이 갈 곳을 잃습니다.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이름 없이 남지요.
지금 그 상태를 두고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나는 무엇을 잃었습니까?
시간, 기회, 체면, 신뢰 같은 것들이 흔한 항목입니다. 사소해 보여도 적으셔야 계산이 끝납니다.
납득이 안 되는 상태에서 자주 필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잃은 것을 상대가 알고 있다는 확인입니다. 이건 사과와 비슷한데 똑같지는 않습니다. 잘못했다는 인정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감당했는지 상대가 안다는 확인이지요.
그 확인이 오면 이상하게도 화가 빨리 내려갑니다. 손해가 없어져서가 아니라 혼자 안고 있던 것이 아니게 되니까요.
그래서 사정 설명만 계속 오면 오히려 더 안 풀립니다. 이해할 재료만 더 주는 것이고, 부족한 것은 이해가 아니었으니까요.
이해가 안 된 상태면 할 일은 묻는 것입니다. 사정을 알면 그 층은 닫힙니다.
납득이 안 된 상태면 할 일은 다릅니다.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한 줄 적고, 가능하면 그 한 줄을 상대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따지는 게 아니라 알리는 것이지요. 그 한 줄이 없으면 아무리 오래 이야기해도 이해만 쌓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알겠는데 아직 걸리는 일이 있으시면 한 줄만 적어보시죠. 나는 무엇을 잃었는가. 그 줄이 비어 있으면 계산이 안 끝난 겁니다.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