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의 다른 판본 두 권을 같이 빌려 가신 분이 있었습니다. 반납할 때는 한 권만 다 읽으셨더군요.
내용은 같은 책인데 한쪽만 끝까지 갔습니다. 저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번역서가 안 넘어가면 대개 자기 이해력을 의심하십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랬어요.
그런데 번역은 사람이 한 작업이라 결과가 다 다릅니다. 같은 원문에서 아주 다른 두 문장이 나오죠. 안 읽히는 게 내 문제가 아닐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말은 문장이 짧게 끊길 때 잘 읽힙니다. 원문의 긴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 한 문장이 길어지죠.
의미는 정확한데 눈이 계속 미끄러지는 문장이 그렇게 만들어지더군요. 정확한 번역과 읽히는 번역이 늘 같지는 않은 겁니다.
옮겨진 말은 두 번 태어난다. 두 번째 탄생이 서투르면, 좋은 생각도 문 앞에서 멈춘다.
고전은 판본이 여러 개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안 읽힌다는 분께 다른 판본을 권해봅니다.
같은 책인데 갑자기 넘어가는 일이 실제로 자주 있어요. 도서관에 두 판본이 다 있으면 첫 장만 비교해 보셔도 됩니다.
뒤에 옮긴이의 말이 붙어 있으면 거기부터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어떤 원칙으로 옮겼는지 적혀 있거든요.
읽기 쉽게 풀었다는 판본과 원문에 충실했다는 판본은 성격이 다릅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쪽을 고르시면 됩니다.
그분은 다 읽은 쪽 판본으로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빌려 가셨습니다. 한 번 맞는 결을 찾으면 그다음이 쉬워지더군요.
무엇이 나에게 읽히는지는 남이 정해줄 수 없습니다. 어떤 문장으로 만날지까지가 내가 고르는 범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