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에 앉으면 별의별 소리가 다 들려. 요 며칠 자주 나오는 게 이거야. 이제는 먼 데 이야기도 그 자리에서 바로 본다고.
옆 탁자 손님이 그러더라고. 말을 몰라도 상관없다고, 누가 옮겨주니까. 그래서 예전 같으면 못 볼 걸 그냥 본다는 거야.
근데 그 말끝에 꼭 이 소리가 붙어. 뜻은 알겠는데 뭔가 안 맞는다고. 재미없는 건 아닌데 붕 뜬다고 말이야.
객잔에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늘 있어. 며칠 전에도 그랬거든. 두 사람이 손짓만으로 술값을 정리하는데, 옆에서 통역해준 사람 얼굴이 제일 난처했어.
셈은 다 맞았어. 근데 한쪽이 농담으로 던진 말이 옮겨지면서 그냥 사실이 돼버린 거야. 웃자고 한 말이 통보처럼 건너간 거지. 그 자리 공기가 잠깐 이상해졌어.
옮겨진 말에서 빠지는 게 딱 그거야. 뜻이 아니라 결. 같은 문장인데 농담인지 시비인지가 안 붙어서 넘어가.
강호에서는 말투가 곧 신분이야. 누가 누구한테 반말을 하는지, 어디서 존대가 꺾이는지, 그걸로 서열이랑 사이가 다 드러나거든.
그래서 무협은 옮기기가 유난히 까다로워. 사부한테 하는 말과 사형한테 하는 말이 다른데, 그 차이가 사라지면 그냥 다 같은 사람이 돼버려. 인물 관계가 통째로 납작해지는 거지.
호칭도 마찬가지야. 무협에서 호칭 하나 바뀌는 건 사건이잖아. 그게 안 옮겨지면 독자는 그 장면이 왜 중요한지 모르고 지나가.
이렇게 말하면 옮긴 건 별로라는 소리처럼 들릴 텐데, 나는 반대야.
여기 오는 손님 중에 먼 데 말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결이 절반쯤 빠져도 안 보는 것보다는 보는 게 낫지. 나부터도 이 세계 말을 다 알아듣고 사는 게 아니거든. 반쯤 알아듣고 눈치로 때우면서 여기까지 왔어.
붕 뜨는 느낌이 들 때 재미없다고 바로 덮지는 말라는 거야.
말투가 안 옮겨져서 그런 경우가 꽤 있거든. 그럴 땐 대사 말고 행동만 따라가 봐. 누가 먼저 일어섰고, 누가 술잔을 안 받았고, 누가 자리를 옮겼는지. 그건 옮겨져도 안 빠지니까.
나도 처음 이 바닥 말이 안 들릴 때 그렇게 버텼어. 말은 놓쳐도 몸짓은 안 놓쳤거든.
말이 국경을 넘는 건 좋은 일이야. 다만 넘어오면서 뭐가 떨어져 나갔는지는 알고 보는 게 덜 억울하지.
붕 뜨는 느낌 때문에 덮은 게 있으면 말해줘. 결이 잘 살아 있는 쪽으로 골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