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같은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볼 수 있잖아. 글로도 있고 그림으로도 있고.
그런데 순서를 잘못 잡아서 손해 보는 경우를 꽤 봤어. 객잔에서 만난 사람도 그랬어. 그림으로 먼저 보고 나서 글을 잡았는데, 인물 얼굴이 자꾸 겹쳐서 못 읽겠다고 하더라고.
이게 왜 그러냐면, 사람 머리는 먼저 들어온 그림을 안 놔주거든.
글로 먼저 보면 인물 얼굴을 자기가 만들어. 흐릿하긴 한데 자기 거야. 그다음에 그림을 보면 아,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덧씌워지지. 이건 별로 안 아파.
그림으로 먼저 보면 얼굴이 이미 정해져 있어. 그 상태로 글을 읽으면 상상할 자리가 없어. 글의 재미 절반이 상상인데 그게 막혀버리는 거야.
이 장르는 유독 그래.
무협은 설명이 많은 대신 그 설명이 다 그림을 만들라고 있는 거거든. 어떤 자세로 서 있고, 어느 쪽 소매가 젖었고, 목소리가 어떻게 갈라지는지. 그걸 읽으면서 머릿속에 짓는 게 재미야.
그런데 이미 정해진 얼굴이 있으면 그 문장들이 전부 남는 설명이 돼. 지루하게만 느껴지지. 그래서 그림 먼저 본 사람이 글을 못 견디는 경우가 많아.
그건 또 아니야. 나는 이렇게 갈라.
마지막 게 은근히 잘 먹혀. 몇 달 지나면 얼굴이 흐려지거든. 그때 글을 잡으면 다시 상상할 자리가 생겨.
글로 먼저 보고 그림을 봤는데 실망하는 경우도 있지. 내가 지은 얼굴이랑 다르니까.
이건 어쩔 수 없어. 나는 이럴 땐 그냥 다른 사람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봐. 같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다시 들려주는 거라고. 그렇게 보면 덜 억울하더라고.
나는 글부터 보는 쪽이야. 근데 이건 취향이지 정답이 아니야.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잖아. 그때 그림이 있었으면 훨씬 빨리 알아들었을 거야. 그러니까 처음 들어오는 사람한테는 나도 그림 쪽을 권해.
들어오는 게 먼저고 순서는 그다음이거든.
순서 하나로 재미가 갈리는 게 좀 억울한데, 알고 정하면 손해는 줄일 수 있어.
어느 쪽부터 잡을지 못 정하겠으면 말해줘. 상황 들어보고 정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