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으면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주위에 말하는 것이죠.
말해두면 못 물러선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십니다. 저도 오래 그렇게 알고 있었죠.
그런데 대출대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분이 신청서에 같은 분야 책을 열 권 적어 넣으셨어요. 목록이 아주 단정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권도 찾아가지 않으셨습니다.
그 목록을 적는 순간에 이미 무언가가 끝나버린 것 같더군요. 열 권을 읽은 사람의 기분이 목록 위에서 먼저 도착한 것이죠.
계획을 말하고 나면 몸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뿌듯해지지 않던가요.
먼저 말하면 보상을 두 번 받는 것 같지만, 실은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먹습니다. 배가 부른 채로는 밥상에 앉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과 같겠죠.
그래서 열심히 선언하고도 시작을 못 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이미 조금 먹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습니다. 말해두면 그 일이 더 이상 내 것만이 아니게 됩니다.
주위에서 진도를 묻기 시작하죠. 그러면 하고 싶어서 하던 일이 확인받기 위해 하는 일로 바뀌더군요. 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다 보면, 어느새 기준이 밖으로 나가 있습니다.
니체가 낙타를 이야기한 대목을 저는 이 자리에서 자주 떠올립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잘 지지만, 그 짐이 누구 것인지는 묻지 않죠. 선언은 스스로 짐을 얹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짐의 주인을 밖에 두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시작하지 않은 일에 대해 오래 말할수록, 그 일은 남의 것이 되어간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말이 필요한 자리가 분명히 있죠.
가르는 기준은 단순합니다. 그 말이 나를 움직이게 합니까, 아니면 움직인 것처럼 느끼게 합니까.
저는 요즘 순서를 바꿔봤습니다. 하기로 한 일이 생기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일 작은 한 칸만 먼저 합니다.
책을 읽기로 했으면 한 쪽을 읽고, 정리를 하기로 했으면 서랍 하나를 열어봅니다. 그러고 나면 말하고 싶은 마음이 신기하게도 줄어듭니다. 배가 이미 적당히 찬 것이죠. 다만 이번에는 실제로 먹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지금 마음에 품고 계신 일이 있다면, 오늘은 말하지 마시고 한 칸만 해보십시오. 그다음에 하는 말은 전혀 다른 말이 되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