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을 삼십 분 동안 말씀하셨습니다. 근거도 여럿이었고 정리도 잘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확인되면 생각을 바꾸시겠느냐고 여쭈니 한 마디도 안 나왔습니다. 거기서 이름이 정해집니다.
소신은 근거 위에 서 있습니다. 근거가 있으니 근거가 무너지면 같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소신을 가진 사람은 "이게 아니면 내가 틀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집은 자리 위에 서 있습니다. 근거는 그 자리를 지키려고 나중에 모은 것입니다. 그래서 근거 하나가 깨지면 다른 근거가 즉시 올라옵니다. 자리는 안 움직이고 아래만 계속 교체되지요.
겉에서 보면 둘 다 단단해 보입니다. 다만 하나는 지지대가 있고 하나는 지지대가 바뀝니다.
가장 잘 드러나는 자리가 여기입니다. 소신은 반박을 재료로 씁니다. 몰랐던 게 나오면 좋아합니다. 판단이 더 정확해지니까요.
고집은 반박을 공격으로 받습니다. 근거를 건드렸는데 사람이 아프다면 그건 근거가 아니라 자기가 걸려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화가 끝나고 나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뭔가 하나라도 새로 알게 됐으면 소신 쪽 대화였고, 이긴 것 같은 기분만 남았으면 고집 쪽 대화였습니다.
지금 지키고 계신 생각이 있으시면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무엇이 확인되면 이 생각을 바꾸시겠습니까?
두 번째가 나온다고 그 생각이 틀린 건 아닙니다. 고집으로 지킨 생각이 맞을 때도 있으니까요. 다만 그때 맞은 것은 판단이 아니라 운입니다.
고집은 성격이 아니라 대개 상황에서 나옵니다. 이미 그 주장으로 뭔가를 걸어둔 상태일 때 나옵니다. 남들 앞에서 말해뒀거나, 그 판단으로 돈이나 시간을 썼거나, 그 입장이 내 정체성처럼 된 경우이지요.
그러면 생각을 바꾸는 일이 판단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 됩니다. 사람은 그건 잘 못 합니다. 그래서 고집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비용이 걸린 상태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남의 고집은 잘 보이는데 내 것은 안 보이는 겁니다. 안에서는 둘 다 똑같이 "나는 근거가 있다"로 느껴지거든요.
소신 쪽이면 할 일은 조건을 말해두는 것입니다. 미리 적어두면 나중에 그 조건이 실제로 왔을 때 물러설 수 있습니다.
고집 쪽이면 할 일은 생각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 무엇이 걸려 있는지 먼저 적는 것입니다. 체면인지, 이미 쓴 시간인지, 사람 관계인지요. 걸린 것이 보이면 그때부터는 판단을 다시 할 수 있습니다. 걸린 것을 안 본 채로 생각만 고치려 하면 안 고쳐지겠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래 지켜온 생각이 있으시면 한 줄만 적어보시죠. 무엇이 확인되면 바꾸겠는가. 적히면 소신입니다.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