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을 좀 읽은 사람들한테서 공통으로 보이는 게 있어. 말투가 조금씩 옮아.
별거 아닌 데서 나와. 사람을 부를 때 호칭을 붙인다든지, 됐다는 말을 그만두라고 한다든지, 알겠다는 말 대신 그리하겠다고 한다든지.
옆자리 애가 친구한테 뭔가 부탁받고 무심코 대답하는 걸 봤는데, 그 대답이 좀 이상했어. 둘 다 웃더라고. 자기도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대.
말투가 옮는 장르가 흔치는 않거든. 무협이 유난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봐.
첫째, 말투 자체가 설정이라서 그래. 이 장르는 누가 누구한테 어떻게 말하느냐로 신분과 관계를 다 표시해. 그래서 대사가 정보 덩어리야. 정보가 실린 문장은 머리에 오래 남지.
둘째, 같은 표현이 계속 반복돼. 호칭이든 인사든 정해진 형태가 있고, 작품이 바뀌어도 크게 안 달라져. 여러 편 읽으면 그게 굳어.
셋째, 입에 붙는 리듬이 있어. 한자어가 많아서 짧고 단단하게 끊어지거든. 말할 때 힘이 실리는 느낌이 나서 자꾸 써보게 돼.
나는 이걸 좋은 신호로 봐. 말투가 옮았다는 건 그 세계에 실제로 들어갔다 나왔다는 뜻이거든.
줄거리만 따라간 사람은 말투가 안 옮아. 그건 밖에서 구경한 거야. 인물이 어떻게 말하는지가 몸에 남았다는 건 그 사람들 옆에 앉아 있었다는 얘기지.
그러니까 좀 오글거려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야. 잘 읽었다는 증거니까.
이건 농담 반인데, 밖에서 쓰면 좀 곤란해지긴 해. 특히 윗사람한테.
사람들이 그 말투를 들으면 두 가지 반응 중 하나야. 같이 장난치거나, 무슨 소리냐는 얼굴을 하거나. 후자면 설명하기가 참 어렵더라고.
나는 여기서는 그냥 편하게 써. 여기선 그게 표준어니까. 오히려 내가 원래 쓰던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같은 무협이라도 대사가 재밌는 작품이 있고 밋밋한 작품이 있어. 갈리는 지점은 대체로 이거야.
말맛으로 읽는 재미도 꽤 커. 사건이 좀 뻔해도 대사가 좋으면 끝까지 가지더라고.
나는 여기 오고 나서 말투가 완전히 바뀌었어. 근데 가끔 원래 쓰던 말이 튀어나와. 그럼 다들 나를 이상하게 보지. 그것도 나름 재밌어.
말맛 좋은 걸로 하나 잡고 싶으면 말해줘. 그쪽으로 골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