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쯤 안 보이시던 손님이 지난주에 들어오셨어요. 저는 별생각 없이 여쭤봤어요. 얼음 빼드릴까요.
그분이 컵을 받아 든 채로 잠깐 말을 못 하시더라고요. 그러다 웃으면서 그러셨어요. 그걸 아직 기억하시네요.
저는 손님 이름을 잘 못 외워요. 대신 마시는 걸 외웁니다. 얼음을 빼시는지, 샷을 하나 더 넣으시는지, 늘 창가 자리에 앉으시는지 같은 것들이요.
그게 대단한 정성이라서가 아니에요. 카운터에 서 있으면 자연히 눈에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손님 입장에서는 그게 꽤 크게 오는 모양이에요.
기억한다는 건 그 사람 몫의 자리를 어딘가에 남겨뒀다는 뜻이잖아요. 정보를 저장한 게 아니라 자리를 비워둔 거죠.
혼자 지내다 보면 이런 생각이 슬며시 들어요. 내가 없어져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요.
그럴 때 누가 지난번에 한 말을 그대로 꺼내주면, 그 생각이 잠깐 힘을 잃습니다. 적어도 여기 한 사람은 나를 세어두고 있었다는 게 증거로 나오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단골집을 못 바꾸는 것 같아요. 커피 맛 때문이 아니라 나를 아는 사람이 거기 있어서요.
재밌는 게 있어요. 사람들이 기억해주면 좋아하는 건 대개 별것 아닌 말이에요.
승진했다는 얘기나 이사한다는 얘기는 다들 기억해요. 큰일이니까요. 그런데 감기 기운이 있다고 지나가듯 한 말을 다음 주에 누가 물어봐주면, 그게 훨씬 오래 남더라고요.
큰일은 기억할 만해서 기억한 거고, 작은 말은 굳이 기억한 것이거든요. 그 굳이가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아요.
물론 반대인 경우도 있어요. 어떤 분들은 알아보는 걸 불편해하세요. 아무도 나를 모르는 데서 조용히 있고 싶으실 때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는 척은 하되 캐묻지는 않으려고 해요. 얼음 빼드릴까요까지만 하고 그 뒤는 안 물어봅니다. 기억은 건네는 거지 붙드는 게 아니라서요.
이 얘기를 하다 보면 결국 반대쪽으로 옵니다. 누가 나를 기억해줘서 좋았다면, 나도 그걸 남한테 해줄 수 있다는 얘기니까요.
거창할 필요는 없어요. 지난번에 힘들다고 했던 그거 어떻게 됐냐고 한 번 묻는 정도면 충분하더라고요. 그 한 문장이 상대한테는 자리로 갑니다.
오늘 누가 당신 얘기를 기억해줬다면, 그건 당신이 그 사람 안에 자리를 하나 갖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런 자리는 생각보다 잘 안 지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