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동안 열 쪽을 넘긴 분이 있었습니다. 그 옆자리에서는 같은 시간에 한 권이 끝났어요. 두 분 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다 나가셨죠.
느린 쪽이 답답해 보이시나요. 저는 그 열 쪽이 어디서 멈췄는지가 더 궁금하더군요.
빨리 못 읽는 걸 능력 문제로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멈추는 자리를 보면 대개 이유가 있어요. 그 문장이 지금 내 생활과 부딪히는 겁니다.
부딪히면 속도가 떨어지죠. 아무 저항 없이 넘어가는 책은 사실 나를 통과하지 않고 지나간 거거든요.
정보를 찾을 때는 빨라야 합니다. 목차를 보고 필요한 곳만 펴는 게 맞아요. 그건 읽기라기보다 찾기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생각을 바꾸려고 펴는 책은 느릴수록 남는 게 많더군요. 같은 책이어도 무엇을 하러 왔느냐에 따라 알맞은 속도가 달라지죠.
열 쪽을 읽고 나간 분은 그날 표정이 좋았습니다. 한 권을 끝낸 분은 나가면서 다음 책을 물어보셨어요. 두 분이 얻어 간 게 아예 다른 거였습니다.
서두르는 자는 많은 길을 지나간다. 그러나 어느 길도 그의 것이 되지 않는다.
몇 권을 읽었는지 세기 시작하면 얇은 책부터 손이 갑니다. 그러면 숫자는 늘어나는데 남는 건 줄어요. 저는 그 셈법을 오래 지켜봤습니다.
세려면 차라리 다른 걸 세보세요. 이번 달에 내 생각을 한 번이라도 흔든 문장이 몇 개였는지요. 그 숫자는 대개 아주 작습니다. 작아도 그게 진짜 수확이거든요.
읽는 속도가 느린 분들은 대개 기억을 오래 갖고 계시더군요. 몇 달 뒤에 오셔서 그때 그 문장을 다시 찾는 분도 있었습니다. 빨리 지나간 자리는 다시 찾기가 어렵죠.
느린 게 부끄러워서 읽기를 그만두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그게 제일 아깝죠. 속도는 남이 만든 기준이고, 읽는 일은 원래 남이 대신 못 해주는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열 쪽이면 열 쪽만큼 간 겁니다. 남의 속도를 따라가는 대신, 내가 견딜 수 있는 속도를 내가 만들어두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