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사람들 자리에서는 한 마디도 안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파하고 아는 사람 둘만 남자 그 방에서 말이 제일 많은 사람이 되셨지요.
그러면 그건 소심함이 아닙니다. 수줍음입니다.
수줍음은 조건에서 켜집니다. 처음 보는 사람, 시선이 몰리는 자리, 평가받는 상황 같은 조건이지요. 조건이 사라지면 같이 사라집니다.
소심함은 나에 대한 결론입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판정이라 조건과 상관없이 따라다닙니다. 편한 자리에서도 뭔가를 못 했을 때 그 이유를 자기 성격에서 찾게 되지요.
그래서 하나는 상황의 이름이고 하나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붙이는 자리가 완전히 다릅니다.
이름을 잘못 붙이면 해볼 수 있는 것이 사라집니다. 상황의 이름을 사람에게 붙이면 바꿀 방법이 없어지니까요.
수줍음이면 조건을 조정하면 됩니다. 사람 수를 줄이거나, 먼저 도착해 자리에 익숙해지거나, 아는 사람 하나를 옆에 두거나요. 조건을 바꾸면 상태가 바뀝니다.
소심함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런 방법을 안 찾게 됩니다. 성격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정리되지요. 그러고는 같은 조건에 계속 들어가서 매번 같은 결과를 확인합니다. 그 확인이 다시 판정을 강화하니 고리가 닫힙니다.
지금 그 상태를 두고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자리를 바꾸면 그 상태도 바뀝니까?
대부분은 첫 번째입니다. 다만 사람들은 자기가 못했던 자리만 기억하고 잘했던 자리는 예외로 처리하는 버릇이 있어서 두 번째로 결론을 내립니다.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편한 자리에서 말을 잘한 것은 그 사람들이 편해서 그런 것이라고 빼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빼고 나면 남는 자료는 못한 자리뿐이니 결론은 늘 소심함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 편한 자리도 자료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자료지요. 조건이 맞았을 때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니까요. 자기 판정을 내리실 때는 못한 자리와 잘한 자리를 같은 무게로 세셔야 정확합니다.
수줍음 쪽이면 할 일은 성격 고치기가 아닙니다. 조건을 하나만 바꾸는 것입니다. 먼저 도착하기, 아는 사람 옆에 앉기, 처음 오 분에 할 말 하나 정해두기 정도면 대개 충분합니다.
소심함이라는 판정을 이미 내리셨으면 할 일은 그 판정의 근거를 세는 것입니다. 근거가 못했던 자리로만 되어 있으면 그 판정은 아직 성립하지 않겠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말이 잘 나왔던 자리가 있으시면 그것도 세어두시죠. 그 자리도 똑같은 나입니다.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