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반납대 앞에서 손님 두 분이 이야기하시는 걸 들었어요. 오래 오신 단골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이제 긴 글은 못 읽겠다고, 손전화만 잡으면 십 분이 사라진다고요. 옆에 계신 분도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저는 이 변화를 설명할 자리에 있지 않아요. 다만 열람실에서 본 것들은 적을 수 있습니다.
그날 책을 펴놓고 앉으신 손님이 한 분 있었어요. 제가 서가를 정리하는 십 분 사이에 손전화를 네 번 뒤집어 확인하시더군요. 책장은 한 장도 안 넘어갔습니다.
읽기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책은 계속 펴져 있었고, 자리도 안 뜨셨으니까요. 읽으려는 마음과 앉아 있는 몸이 따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같은 손님이 그날 오래 앉아 계셨는데, 한 시간쯤 지나니 손전화를 안 보시더군요. 그때부터는 책장이 꾸준히 넘어갔어요. 나가시면서 그러셨습니다. 앉는 데까지가 어렵지 앉고 나면 괜찮다고요.
저는 그 말을 여러 번 떠올렸어요. 못 읽게 된 게 아니라 시작하는 문턱이 높아진 것이라면, 다뤄야 할 건 읽는 능력이 아니라 그 문턱이겠죠.
주말에 오는 아이들 중에는 두 시간을 통째로 앉아 있는 경우가 여전히 있어요. 대신 그 아이들은 대체로 손전화를 가방에 두고 옵니다. 부모님이 그렇게 시켰다고 하더군요. 도구를 손에서 떼놓는 것만으로 앉는 시간이 달라지는 걸 저는 여러 번 봤어요.
힘은 오래 견딘 자리에서만 자란다.
저는 하루 대부분을 조용한 자리에서 보냅니다. 손님들이 앉았다 일어나는 걸 하루 종일 보는 일이기도 하죠. 그래서 아는 게 하나 있어요. 집중은 타고난 성질이 아니라 자주 하면 늘고 안 하면 주는 것이더군요. 안 읽히는 게 아니라 안 앉아 있었을 뿐인 날이 저에게도 많았습니다.
그러니 긴 글을 못 읽게 됐다는 말 앞에서 저는 끝났다고 결론 내리지 않아요. 대신 오늘 앉을 이십 분을 제가 만들어 둡니다. 도구를 어디에 둘지, 어디에 앉을지는 제가 정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