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손님 하나가 자기가 만든 걸 보여줬는데, 꺼내기 전에 별거 아니라고 세 번 말하더라고.
보니까 별거 맞던데. 근데 내가 좋다고 하니까 또 아니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 얘기는 거기서 끝났어.
이게 그 손님만 그런 게 아니야. 요새 다들 그래. 단골 하나는 아예 먼저 낮춰야 편하다고 하더라. 뉴스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고 하고.
이게 재밌는 대목이야. 무협 읽어보면 인물들이 하나같이 자기를 낮추거든.
포권하면서 재주가 미천하다고 해. 실제로는 열 명을 눕힐 수 있는 놈이 그래. 사부한테 배운 게 얕다느니, 이름을 밝히기 부끄럽다느니.
근데 이게 겸손해서가 아니야. 계산이야.
무협에서 자기를 낮추면 뭐가 벌어지냐면, 상대가 실력을 얕잡아 봐. 그러면 방심하고 먼저 나서지.
먼저 나선 놈은 자기 무공을 보여준 거야. 낮춘 놈은 아직 안 보여줬고. 정보를 안 주고 상대 정보만 받는 거지. 강호에서 이게 얼마나 큰 이득인지는 말할 것도 없어.
그리고 낮춰놓으면 지든 이기든 손해가 적어. 이기면 대단한 거고, 져도 원래 미천하다고 했으니 체면이 안 상해. 어느 쪽으로 굴러도 안 밑지는 자리를 미리 잡아두는 거야.
그런데 무협 읽다 보면 예외가 있어. 진짜 꼭대기에 있는 놈들은 안 낮춰.
그냥 자기 이름을 대. 그것만으로 상대가 물러나니까. 낮출 필요가 없는 놈이 안 낮추는 거야. 그러니까 낮추는 동작 자체가 아직 증명이 필요한 자리에 있다는 표시지.
이걸 알고 보면 무협 대사가 다르게 읽혀. 누가 얼마나 낮추는지를 세어보면 그 인물의 위치가 나와.
그럼 지금 사람들은 왜 낮추냐. 나는 강호랑은 좀 다르다고 봐.
손님들 얘기 들어보면 이유가 대충 이래.
셋 다 미리 맞을 걸 계산하는 거야. 강호에선 이득을 보려고 낮췄는데, 여기선 손해를 덜 보려고 낮추는 거지. 방향이 반대야.
여기가 내가 아깝다는 대목이야.
어제 그 손님도 그랬잖아. 별거 아니라고 먼저 말해버리니까 내가 뭐라고 더 물어보기가 애매해졌어. 좋다고 해도 아니라고 하니까 두 마디 만에 끝나더라고.
객잔에서 얘기가 길어지는 건 누가 자기 걸 제대로 꺼낼 때야. 무용담이 밥값이라는 게 그런 뜻이지. 낮추는 게 예의가 되면 꺼낼 얘기가 사라져.
그래서 요새 나는 별거 아니라는 말이 나오면 그냥 넘겨. 대꾸를 안 해.
대신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어. 그러면 대개 말이 길어지더라. 낮추는 건 습관이라 안 고쳐지는데, 만드는 얘기는 물어보면 나오거든.
무협에서 제일 오래 가는 놈이 잘 묻는 놈이라고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이것도 같은 얘기야.
너도 뭐 있으면 그냥 꺼내봐. 별거 아니라는 말은 빼고. 나는 그거 듣고 싶어서 여기 앉아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