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을 읽다 보면 집단 이름이 두 가지로 갈려. 뒤에 파나 문이 붙는 곳이 있고, 세가가 붙는 곳이 있어.
나는 한동안 이걸 그냥 이름 취향인 줄 알았거든. 아니야. 완전히 다른 종류의 조직이야.
문파는 배움으로 잇는 집단이야. 재능 있는 아이를 받아서 가르치고, 그 아이가 커서 다시 제자를 받아. 핏줄은 상관없어. 그래서 문파의 수장 자리는 원칙적으로 실력과 인망으로 정해지지.
세가는 핏줄로 잇는 집단이야. 성씨가 곧 소속이고, 무공은 집안 안에서만 돌아. 딸이 시집을 가면 그 무공을 가지고 나가는지가 문제가 되고, 데릴사위를 들이는지가 사건이 돼.
이 차이 하나에서 나머지가 전부 따라 나와.
문파에서 터지는 갈등은 대체로 노선 싸움이야. 누구를 다음 장문인으로 세울지, 어느 편에 설지, 계율을 지킬지 말지. 명분 싸움이라 말이 길어지고 회의 장면이 많아지지.
세가에서 터지는 갈등은 상속 싸움이야. 장자냐 차남이냐, 본가냐 방계냐, 서자를 인정하느냐. 이쪽은 명분보다 감정이 앞서. 그래서 훨씬 잔인해지고, 훨씬 개인적으로 아파.
읽다가 인물 이름이 갑자기 우르르 늘어나면 대체로 세가 편에 들어간 거야. 형제와 숙부와 사촌이 다 나와야 하거든.
세가 쪽은 대개 돈이 많은 집안으로 나와. 상단을 끼고 있거나, 땅을 갖고 있거나, 관과 줄이 닿아 있어.
이것도 구조상 자연스러워. 핏줄로 잇는 집단은 대를 이어 재산을 쌓을 수 있잖아. 반면 문파는 제자가 계속 바뀌니까 개인 재산이 아니라 문파 재산으로 굴러가고, 그러면 규모는 커도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돈은 적어지지.
그래서 무협에서 돈 쓰는 장면이 시원하게 나오면 대체로 세가 자제야. 문파 제자는 대체로 가난해.
작품을 폈을 때 이걸로 방향을 잡을 수 있어.
하나 덧붙이면, 세가는 무림 안에서 관과 제일 가까운 위치라 정치 이야기가 붙기 좋아. 그쪽이 취향이면 세가 중심 작품부터 보면 돼.
나는 처음에 세가랑 문파를 뭉뚱그려서 읽다가 인물 관계를 몇 번 놓쳤어. 이 구분 하나만 잡아도 등장인물이 갑자기 정리되더라고.
지금 읽는 작품에서 가문 쪽이 재미없게 느껴지면 말해줘. 그 자리를 잘 쓴 쪽으로 하나 짚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