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치 대출 기록이 서가 두 칸 안에서만 찍힌 분이 있었습니다. 목록이 아주 정갈했어요. 한 사람의 취향이 그대로 보이더군요.
정갈한데 조금 좁아 보였습니다. 저는 그 목록을 오래 봤습니다.
한 분야를 오래 읽으면 그 안에서 깊어집니다. 처음엔 안 보이던 차이가 보이기 시작하죠. 열 권쯤 읽으면 저자마다 어디가 다른지 감이 옵니다.
그 깊이는 이것저것 한 권씩 읽어서는 절대 안 생기더군요. 그러니 편식이라는 말부터 붙일 일은 아니에요.
문제는 책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같은 분야를 읽으면 대개 같은 질문만 다루게 되거든요. 답은 늘어나는데 물음은 그대로인 상태요.
그러면 아는 건 많아지는데 생각은 잘 안 바뀝니다. 저는 이걸 대출 기록에서 종종 봅니다. 몇 년째 같은 자리를 도는 목록이 있어요.
한 분야를 오래 읽으신 분들은 질문이 아주 정확해집니다. 무엇을 찾는지 알고 오시니 제가 도울 것도 별로 없어요. 그건 분명한 강점이거든요.
늘 같은 문으로만 드나드는 자는, 그 집이 얼마나 큰지 끝내 알지 못한다.
낯선 분야를 읽으라는 말이 재미없는 걸 참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그런 독서를 권하지 않아요.
대신 같은 질문을 다른 자리에서 다루는 책을 찾으면 됩니다. 사람이 왜 반복하느냐는 물음은 철학에도 있고, 역사에도 있고, 심지어 요리책에도 있거든요. 각도가 바뀌면 익숙한 질문이 다시 낯설어집니다.
서가 배치는 사람이 정한 구획일 뿐입니다. 실제로 책들은 서로 넘나들죠. 한 칸 옆에 꽂힌 책이 지금 읽는 책의 뒷장인 경우도 많더군요.
늘 가던 서가에서 딱 한 칸만 옆으로 가보시는 걸 권합니다. 세 권을 고르지 마시고 한 권만요.
안 맞으면 돌려주면 그만입니다. 무엇을 읽을지는 내가 정하고, 그 목록의 폭도 결국 내가 정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