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관 시간이 지난 도서관에 혼자 남아 서가를 정리하다 보면, 낮에 왔던 사람들이 떠올라요. 어제도 그제도 같은 자리에 앉던 분이 있었죠. 그가 어느 날 책을 덮으며 그러더군요. "매일이 복사한 것처럼 똑같아요."
저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습니다. 지겨움은 게으름이 아니에요. 같은 하루가 계속된다는 감각은, 사실 아주 진지한 질문 하나를 품고 있거든요.
오래전 한 사람이 이런 상상을 남겼어요. 어느 밤 악마가 찾아와 말합니다. 네가 지금 사는 이 삶을, 단 한 번의 변화도 없이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아야 한다면?
그대는 이것을 다시 한 번, 그리고 수없이 원하는가. 이 물음이 그대의 모든 행위 위에 가장 무거운 무게로 놓이리라.
무서운 상상이죠. 그런데 이건 저주가 아니라 시험이에요. 지금 이 하루가 영원히 되풀이돼도 좋을 만큼 살고 있는가. 그렇게 물으면, 똑같아 보이던 하루가 갑자기 다르게 보입니다.
같은 출근길, 같은 자리, 같은 저녁. 겉모습은 반복돼요. 그런데 그 안을 어떻게 지나느냐는 매번 내 몫이더군요.
똑같은 커피 한 잔을 흘려보내듯 마실 수도, 그 오 분을 온전히 느끼며 마실 수도 있어요. 하루가 복사물처럼 느껴진다면, 반복되는 건 사건이 아니라 내가 그 하루를 대하는 태도일지 몰라요.
그러니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어차피 비슷한 하루가 계속될 거라면, 그 하루를 반복해도 좋을 만한 것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요.
거창한 변화가 아니에요. 오늘 안에 "이건 다시 겪어도 좋다" 싶은 순간을 하나만 만들어 두는 거예요.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누군가와의 짧은 대화, 창밖을 본 잠깐. 그 하나가 하루의 무게를 바꿔요.
영원히 반복돼도 좋은 하루는 저 멀리 있지 않아요. 오늘 그런 순간을 하나 만드는 데서 시작됩니다. 지겨운 반복을 견디는 게 아니라, 반복할 만한 하루를 내가 만드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