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주에 같은 책을 반납하신 두 분이 계셨습니다. 한 분은 위로가 됐다고 하셨고, 한 분은 답답했다고 하셨어요.
같은 문장을 읽고 정반대로 나온 겁니다. 저는 그게 이상하지 않더군요.
인쇄된 부분은 고정돼 있죠. 나머지 절반은 읽는 사람이 채웁니다. 그래서 같은 책이 사람 수만큼 생기는 겁니다.
무엇을 겪고 왔느냐에 따라 걸리는 문장이 달라져요. 텍스트는 하나인데 통과하는 사람이 다르니까요.
책 얘기를 하다가 서로 얼굴이 굳는 경우를 봤습니다. 상대가 못 읽었다고 여기는 순간 대화가 끝나죠.
그런데 대개는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위치의 문제더군요. 지금 지쳐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로 읽히는 문장이, 뭔가 바꾸려는 사람에게는 변명으로 읽힙니다.
같은 문장이 두 사람을 다르게 친다면, 다른 것은 문장이 아니라 그들이 서 있는 자리다.
무엇이 좋았는지 물어보면 책보다 그 사람 얘기가 나옵니다. 저는 그래서 반납대에서 짧게라도 여쭤보는 편이에요.
어디서 멈췄고 어느 대목이 싫었는지를 들으면 다음에 뭘 권해야 할지가 잡힙니다. 감상은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좌표거든요.
다들 좋다는 책이 나한테는 안 읽히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그건 지금의 내가 그 자리에 없다는 뜻이지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몇 년 뒤에 같은 책이 완전히 다르게 읽히는 일도 흔하더군요.
같은 책을 읽고 다르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대화가 책보다 남습니다. 저는 그런 장면을 열람실에서 몇 번 봤어요.
그러니 감상이 갈렸다고 서둘러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이 나를 쳤는지는 내가 정확히 아는 일이고, 그 자리는 남이 대신 정해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