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삼십 분 일찍 나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계속 시계를 보고 계셨다고 하셨지요.
시간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건 부지런함이 아니라 서두름입니다.
부지런함은 시간보다 앞에 서는 것입니다. 여유를 만들어두고 그 여유 안에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속도가 빨라도 안이 조용합니다.
서두름은 시간에 쫓기는 것입니다. 뒤에서 밀리는 감각이라 안이 시끄럽습니다. 실제로 늦지 않아도 쫓기는 느낌은 그대로 있지요.
그래서 밖에서 보면 둘 다 빠릅니다. 갈리는 자리는 속도가 아니라 어디에 서 있느냐입니다.
여기가 중요한 자리입니다. 서두름은 시간이 모자라서 생기는 게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찍 나와도 안 없어집니다.
원인은 대개 결과에 대한 불안 쪽에 있습니다. 늦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그림이 너무 선명하면, 시간이 남아도 몸은 계속 대기합니다. 시계를 보는 것은 시간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그 불안을 확인하는 행동이지요.
그러니 삼십 분을 더 확보해도 같은 상태가 됩니다. 확보한 시간이 아니라 확보 안 된 안심이 문제니까요.
지금 그 상태를 두고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시간이 지금보다 한 시간 더 있으면 편해지겠습니까?
두 번째로 답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대개 이미 남들보다 일찍 움직이고 계시지요.
서두름의 대가는 시간이 아니라 정확도에서 나옵니다. 쫓기면서 하면 빠뜨립니다. 그리고 빠뜨린 것을 나중에 다시 하게 되니 결국 시간이 더 듭니다.
또 하나는 몸입니다. 하루 종일 대기 상태로 있으면 저녁에 이유 없이 지칩니다. 한 일의 양보다 훨씬 더 지치지요.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 피로를 보고 자기가 체력이 약하다고 결론 내리시는 겁니다. 체력이 아니라 켜둔 시간이 길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부지런함 쪽이면 할 일이 없습니다. 이미 앞에 서 계신 거니까요.
서두름 쪽이면 할 일은 더 일찍 나오는 게 아닙니다. 늦으면 실제로 무슨 일이 생기는지 한 줄로 적는 것입니다. 적어보면 대개 생각보다 작습니다. 크기가 정해지면 몸이 대기를 끕니다. 크기를 모를 때만 계속 켜져 있으니까요.
그 한 줄이 삼십 분보다 크게 작동할 겁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시계를 몇 번 보셨는지 세어보시죠. 시간이 남았는데도 자주 보셨다면 보고 계셨던 건 시계가 아닙니다.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