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 있어. 손님이 자리에 앉아서 뭘 시킬지 정하기 전에 옆 탁자를 슬쩍 보거든. 그러고는 물어. 그거 어때요, 하고.
며칠 전에도 그랬어. 마셔보지도 않고 옆자리 대답부터 들은 다음에 같은 걸 시키더라고. 그 사람 말로는 실패하기 싫어서 그런대.
단골 아저씨는 요즘 다들 그런다고 하더라. 뭘 하든 남들이 뭐라 했는지부터 본다고 말이야.
강호에서는 원래 소문이 사람보다 먼저 도착해.
어느 문파가 어떻다더라, 저 사람은 성질이 어떻다더라. 실제로 만나기 전에 이야기가 먼저 와 있잖아. 그러니까 남의 말을 듣고 정하는 건 옛날부터 있던 일이야.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소문이 더 많아지고 더 빨라진 것뿐이지. 근데 그게 꽤 큰 차이더라고.
객잔에서 겪어보니까 이래.
옆자리 한 사람이 맛있다고 하면 손님은 반쯤 믿어. 자기 입맛이랑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세 탁자가 같은 말을 하면 그때부터는 안 재봐. 그냥 시켜.
그러면 그 집에서 잘 나가는 것만 계속 잘 나가. 나머지는 아무도 안 건드려. 나는 이걸 매일 보고 있어. 새로 들인 게 안 팔리는 이유의 절반은 이거야.
이걸 두고 자기 취향이 없다고 하는 건 좀 심한 말이야. 나는 그렇게 안 봐.
한 끼 값이 만만치 않고 저녁에 앉을 시간도 얼마 없는데, 그걸 모르는 것에 걸었다가 날리면 억울하잖아. 남의 말을 먼저 듣는 건 그 억울함을 피하려는 거지 게을러서가 아니야.
나 같아도 물어봐. 실제로 물어보고.
나는 손님이 남의 말부터 물으면 되묻는 편이야.
지난번에 뭐 시켰다가 별로였는지, 어떤 게 안 맞았는지. 그거 두어 개만 들으면 골라줄 게 확 좁혀지거든. 남들이 좋다고 한 걸 그대로 주는 것보다 이게 훨씬 잘 맞아.
이야기도 똑같아. 다들 좋다고 하는 게 그 사람한테도 좋을 확률은 생각보다 낮아. 무협은 특히 그래. 결이 갈라지는 폭이 워낙 넓거든. 통쾌한 걸 좋아하는 사람한테 쓸쓸한 걸 주면 좋은 작품이어도 안 붙어.
남 말을 먼저 듣는 건 안전한 방법이야. 다만 그것만으로는 자기한테 맞는 걸 못 찾더라고. 나는 그걸 여기서 매일 봐.
뭘 좋아하고 뭘 못 견디는지만 말해줘. 남들 말 말고 그걸로 골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