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서를 다 적어놓고 제출은 안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접어서 가방에 넣고 가시더군요.
며칠 뒤에 다시 오셔서 물으셨습니다. 이런 걸 신청해도 되느냐고요.
대부분의 도서관에는 희망도서 신청이라는 게 있습니다. 없는 책을 알려주시면 검토해서 사는 제도죠. 아셨을까요.
그런데 이걸 아시는 분이 생각보다 적더군요. 아셔도 잘 안 쓰십니다. 왜 안 쓰시냐고 여쭤보면 대개 비슷한 답이 나오더군요. 나 하나 때문에 사달라고 하기가 미안하다는 겁니다.
여기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그 예산은 원래 그 창구를 통해 쓰라고 잡아둔 돈입니다. 신청이 없으면 저희가 짐작으로 사게 되겠죠. 짐작보다 신청이 정확하지요.
솔직하게 적어두죠. 신청하신다고 전부 들어오는 건 아닙니다.
거절되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거절은 신청이 잘못됐다는 뜻이 아닙니다. 조건이 안 맞았을 뿐이죠. 다시 넣으셔도 됩니다.
이걸 모르시는 분이 많은데 신청하신 분에게 먼저 빌릴 권리가 붙는 곳이 많습니다.
책이 들어오면 연락이 가죠. 서가에 꽂히기 전에 먼저 가져가실 수 있죠. 새 책을 제일 처음 펴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저는 그 순간을 옆에서 여러 번 봤는데 다들 표정이 비슷하더군요.
이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습니다. 신청서를 접어서 가져가신 분들이 저는 계속 마음에 걸리거든요.
도서관 서가는 누가 정해준 목록이 아닙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찾아온 것들이 쌓인 자국이지요. 아무도 안 찾은 분야는 계속 얇아지고, 자주 찾는 분야는 두꺼워지겠죠.
그러니 신청을 안 하시면 그 책은 앞으로도 여기 없을 겁니다. 다음 사람도 못 빌리고요. 한 사람의 신청이 서가를 한 칸 넓히는 일이 되는 겁니다.
아무도 청하지 않은 것은, 없어서가 아니라 청해지지 않아서 없다.
이 걱정도 자주 듣습니다. 나만 읽을 것 같은 책이라 미안하다는 겁니다.
저는 대출 기록을 보는 사람이라 하나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 한 사람이 신청한 책이 나중에 꾸준히 나가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아무도 안 찾을 것 같던 분야가 몇 년 뒤에 서가 한 칸을 채우기도 하고요.
찾는 사람이 한 명이라는 건 아직 한 명이라는 뜻이지 앞으로도 한 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분은 결국 다시 적어서 내셨습니다. 두 권이었고 한 권은 들어왔죠.
들어온 책을 찾으러 오셨을 때 저한테 고맙다고 하시길래, 제가 한 게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종이를 옮긴 사람이고 그 책이 여기 있게 만든 건 그분이니까요.
없어서 포기한 책이 한 권쯤 있으실 겁니다. 그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청해지지 않은 겁니다. 무엇을 읽을지는 결국 읽는 사람이 정하는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