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동안 한 번도 안 쓰신 물건이었습니다. 버리려고 꺼내셨다가 다시 서랍에 넣으셨지요. 언젠가 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삼 년 동안 안 쓰셨는데 버릴 때가 되니 갑자기 쓸 것 같아졌습니다. 그러면 그건 필요가 아닙니다. 아까움입니다.
필요한 것은 평소에 떠오릅니다. 쓸 일이 있으니 생각이 나지요. 어디 있는지도 대개 압니다.
아까운 것은 버릴 때만 떠오릅니다. 평소에는 있는지도 모르다가 처분하려는 순간에만 존재감이 생깁니다. 이때 작동하는 것은 쓰임이 아니라 잃는다는 감각입니다.
그래서 아까움은 물건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손실에 대한 감정입니다. 대상이 물건인 척할 뿐이지요.
아까움이 특히 세게 붙는 물건이 있습니다. 비싸게 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돈은 이미 나갔습니다. 지금 버리든 안 버리든 안 돌아오지요. 그러니 그 돈은 판단에 넣을 항목이 아닙니다. 넣으면 계산이 틀어집니다.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안 쓰는 물건을 계속 두는 것이 돈을 아끼는 일이라고 느끼는 겁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아껴집니다. 대신 자리와 눈길이 계속 나갑니다. 서랍을 열 때마다 한 번씩 보게 되니까요.
버릴지 말지 정하실 때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지금 이게 없다면 새로 사시겠습니까?
가격이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다시 고르겠느냐로 묻는 게 핵심입니다. 산 가격은 이미 지나간 항목이니까요.
같은 구조가 물건 아닌 것에도 붙습니다. 안 만나는 관계, 안 하는 취미, 오래된 계획 같은 것들이지요.
전부 같은 질문으로 갈립니다. 지금 없다면 새로 시작하겠느냐요. 그 답이 아니오인데도 계속 붙잡고 있으면, 붙잡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그동안 들인 것입니다.
그것도 이미 지나갔습니다. 안 돌아오지요.
필요한 것이면 할 일은 잘 두는 것입니다. 찾기 쉬운 자리에요.
아까운 것이면 할 일은 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기한을 정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섯 달 안에 한 번이라도 쓰면 두고, 안 쓰면 그때 보낸다고요. 기한이 있으면 판단이 나중에 저절로 나옵니다. 지금 결정하려니 아까움이 이기지만, 여섯 달 뒤에는 자료가 생기니까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서랍에 안 쓰는 물건이 있으시면 하나만 물어보시죠. 지금 없다면 새로 사시겠습니까.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