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대에서 짧은 농담을 던지고 나가시던 분이, 문 앞에서 갑자기 돌아와 사과를 하고 가신 적이 있어요. 저는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그분은 몇 걸음 가는 동안 계속 그 말을 붙들고 계셨던 겁니다.
말은 이미 갔는데, 말한 사람만 그 자리에 남아 있더군요.
행동은 고칠 수 있어요. 늦으면 다음엔 일찍 가면 되고, 잘못 만들면 다시 만들면 됩니다. 그런데 말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취소한 말도 취소했다는 사실까지 같이 남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한 말을 밤새 재생하죠. 그 장면을 되돌릴 수 없으니 머릿속에서라도 다시 해보는 겁니다. 이 반복은 반성이 아니라 대체로 그냥 고통이더군요.
저는 이 둘을 구분하려고 합니다. 점검은 한 번이면 끝나요. 무엇이 잘못됐는지, 다음엔 어떻게 할지를 정하면 닫힙니다. 재생은 끝이 없어요. 결론이 안 나니까 계속 돌죠.
그러니 세 번째 재생부터는 새로 알아낸 게 없다는 뜻입니다. 그때는 생각을 멈추는 게 아니라 형태를 바꿔야 하더군요. 종이에 적거나 사과를 하거나, 밖으로 내보내는 쪽으로요.
뉘우침을 오래 씹는 자는 두 번 잘못한다.
이건 위로가 아니라 관찰입니다. 사람은 자기 말을 훨씬 크게 기억하더군요. 상대에게는 하루의 여러 장면 중 하나일 뿐인 게, 나에게는 그날의 전부처럼 남습니다.
물론 정말로 상처를 준 말도 있죠. 그건 다릅니다. 그럴 때는 시간이 아니라 사과가 필요하고, 사과는 빠를수록 짧아지더군요.
한 말이 계속 걸린다면, 그 장면을 계속 돌려서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엇이 걸리는지 한 줄로 적고, 사과할 것이면 오늘 하고, 아니면 그 종이를 덮으세요.
말은 되돌릴 수 없지만 다음 말은 아직 안 했습니다. 어떤 사람으로 말할지는 지금부터 내가 정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