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몇 번 해봤어. 밤새 재밌게 본 걸 다음 날 바로 권했지. 이거 진짜 물건이라고, 너도 분명 좋아할 거라고.
그리고 며칠 뒤에 어땠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안 나와. 술잔만 돌리더라고. 그 몇 초가 어찌나 길던지.
그날 알았어. 추천이 빗나가면 작품이 깎이는 게 아니라 내가 깎인다는 것을.
내가 준 게 작품이 아니라 기억이었거든.
나는 그걸 볼 때의 상태까지 같이 봤잖아. 어디까지 지루했다가 어느 대목에서 확 붙었는지, 그 전에 뭘 읽고 있었는지, 그날 기분이 어땠는지. 그게 다 얹혀서 재밌었던 거야.
근데 상대한테는 그 껍데기만 건너가. 앞부분 지루한 구간을 견딜 이유가 하나도 없는 상태로 받는 거지. 무협은 특히 심해. 초반에 낯선 이름이랑 세계관 설명이 쏟아지니까, 참을 이유가 없으면 거기서 그냥 덮어.
나는 요즘 이렇게 해.
마지막 게 왜 중요하냐면, 접을 자유를 안 주면 상대가 숙제를 받은 게 되잖아. 숙제는 아무도 안 좋아하지.
받는 입장도 만만치 않아. 성의 있게 권해준 걸 안 맞는다고 말하기가 은근히 어렵거든.
그럴 땐 작품 얘기 말고 결 얘기를 하면 편해. 재미없더라 대신에, 나는 이런 결은 좀 힘들더라고 말하는 거지. 그러면 상대도 다음 걸 다르게 골라줄 수 있잖아. 서로 안 다치고.
추천은 주는 일이 아니라 묻는 일이 먼저야. 나는 이 순서를 한참 뒤에 알았어.
지금은 뭐 재밌는 거 없냐고 물어오면 바로 안 던져. 요즘 뭐 보다가 접었는지, 어떤 장면에서 지루했는지부터 물어봐. 그거 두어 개만 들어도 골라줄 게 확 좁혀지거든.
한참을 잘못 권하고 다닌 사람이 하는 소리라 좀 믿어도 돼. 나도 여기서 많이 깨졌어.
네 취향은 어느 쪽인지 말해줘. 이번엔 묻는 것부터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