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권을 한 번에 빌려 가시는 분이 있어요. 반납될 때 보면 전부 앞쪽만 접혀 있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또 여섯 권을 빌려 가시죠.
한 권을 끝내지 못한 채 새 책을 펼치는 일. 저도 그렇게 지낸 시기가 길었습니다.
동시에 여러 권을 읽는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더군요. 갈리는 지점은 하나예요. 지금 이 책이 재미없어서 다른 책을 여는 건지, 아니면 이 책이 던진 물음 때문에 다른 책이 필요해진 건지 말이죠.
후자는 오히려 좋은 신호입니다. 한 권이 다른 한 권을 불러오는 건 독서가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전자는 다릅니다. 그건 읽는 게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기분만 반복해서 얻고 있는 거더군요.
책의 앞 삼십 쪽은 원래 잘 읽혀요. 저자가 가장 공들여 쓴 자리니까요. 중반은 그렇지 않습니다. 논지가 반복되고 예시가 길어지죠.
그래서 여러 권을 펼쳐두면 매번 제일 쉬운 구간만 반복해서 지나가게 됩니다. 시작의 쾌감은 계속 얻지만, 남는 게 없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 있더군요.
여러 문 앞에 선 자는 문을 여는 법만 익히고, 방 안을 보지 못한다.
지금은 성격이 다른 두 권만 펼쳐둬요. 머리를 쓰는 책 하나, 힘을 덜 들이고 읽는 책 하나. 피곤한 날에도 읽을 자리가 있으니 완전히 놓지는 않게 되더군요.
세 권째가 생기면 그때는 셋 중 하나를 덮습니다. 덮는 게 지는 게 아니라, 끝까지 갈 한 권을 정하는 일이니까요.
읽던 책이 자꾸 늘어난다면, 여섯 권을 다 끝내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은 그중 하나만 골라 중반 삼십 쪽을 넘겨보세요.
여는 사람은 많고 끝까지 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어느 방까지 들어갈지는 오늘 고르는 한 권이 정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