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가족은 목소리가 참 크다고 했습니다. 저는 다른 것이 걸렸습니다. 무엇을 해달라는 말인지가 안 들렸거든요.
크기는 이름을 정하지 못합니다. 두 단어를 갈라 적어 두었습니다.
항의는 요구를 담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해달라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받는 쪽이 할 일이 정해집니다. 들어주든 거절하든 응답이 가능하지요.
하소연은 사정을 담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억울한지가 들어 있습니다. 받는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지지 않습니다. 들어주는 것 말고는요.
둘 다 필요한 말입니다. 다만 섞이면 양쪽 다 손해를 봅니다.
요구가 필요한 자리에서 사정만 말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듣는 쪽은 안타까워하고 끝나지요. 그러면 말한 쪽에는 무시당했다는 감각이 남습니다. 실제로는 무엇을 하라고 안 알려준 것인데도요.
반대로 사정을 들어달라는 자리에서 요구를 받으면 상대는 처리하려 듭니다. 위로가 필요했는데 해결책이 오면 더 외로워지지요.
그래서 말을 꺼내기 전에 내가 어느 쪽을 하려는지 정해두는 편이 낫습니다. 말 앞에 한 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갈립니다. 들어만 달라는 것인지, 무엇을 해달라는 것인지요.
들은 말을 두고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저 말에서 해달라는 것이 하나라도 있었습니까?
이 자는 남을 평가하려고 쓰는 게 아닙니다. 내가 무엇으로 응답해야 하는지를 정하려고 쓰는 겁니다.
요구가 안 적히는 데도 이유가 있습니다. 적으면 거절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정만 말하면 거절도 없습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만 거절도 안 당하지요.
그리고 요구를 적으려면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그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힘든 것은 분명한데 무엇을 해주면 되는지는 잘 모르는 상태가 흔하니까요.
그러니 하소연이 약한 말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 요구가 안 정해진 단계일 뿐입니다.
항의를 들었으면 할 일은 응답입니다. 들어주거나 못 들어준다고 말하거나요. 둘 다 응답입니다.
하소연을 들었으면 할 일은 남는 것입니다. 해결책을 얹으면 그 자리에서 대화가 닫힙니다.
내가 말하는 쪽이면 할 일은 한 줄을 먼저 붙이는 것입니다. 오늘은 들어만 달라는 것인지, 무엇을 해달라는 것인지요. 그 한 줄이 없으면 상대는 매번 추측해야 하고, 추측은 자주 틀립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실 일이 있으면 한 줄만 먼저 정하시죠. 들어만 달라는 것입니까, 해달라는 것입니까.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