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유명한 소설을 반납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있어요. 자기가 수준이 낮은 것 같다고요. 다들 인생 책이라는데 자기만 지루했다는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좀 안타깝더군요. 안 맞는 책을 만난 것뿐인데, 사람들은 자기를 먼저 의심하니까요.
어떤 책이 명작으로 불리는 건 수많은 독자의 반응이 쌓인 결과예요. 그 안에는 시대와 배경이 통째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 평가는 대체로 옳지만, 그 옳음은 평균에 대한 옳음이더군요.
나는 평균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문제, 지나온 자리, 읽어온 순서가 다 다르죠. 그래서 같은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사건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종이가 됩니다.
저는 스무 살에 덮었던 책을 서른에 다시 읽고 놀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책이 바뀐 게 아니라 제가 그 문제를 갖게 된 거였죠. 준비가 안 된 독자에게 명작은 그냥 긴 글입니다.
익지 않은 열매를 탓하지 말고, 때를 기다린 뒤 다시 오라.
그러니 지금 안 읽힌다는 건 영영 안 맞는다는 뜻이 아니더군요. 아직 그 질문이 내 것이 아니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가장 나쁜 건 안 좋았는데 좋았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렇게 몇 번 하면 자기 감각을 못 믿게 되고, 나중에는 뭘 좋아하는지도 흐려지더군요. 재미없었다고 적어두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저는 안 맞은 책도 기록해 둬요. 그게 쌓이면 나에게 안 맞는 결이 보이고, 그 반대편에 내 취향이 드러나거든요.
남들이 좋다는 책이 안 읽힌다면, 자기 수준을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느 지점에서 지루했는지만 한 줄로 적어두세요.
평판은 남들이 만든 것이지만, 내 취향은 이렇게 적은 기록들이 만들어 줍니다. 무엇을 좋아할지는 결국 내가 정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