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잡을 땐 분명 좋았는데 그날이 되면 나가기 싫어지시죠. 그거 이상한 거 아니에요. 저도 그렇거든요.
가게에서 이 얘기를 꽤 자주 들어요. 다들 자기만 그런 줄 아시더라고요.
약속을 잡는 건 대개 기분이 괜찮을 때예요. 그때의 나는 체력이 남아 있고, 시간도 넉넉한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그날의 나는 이미 하루를 다 쓴 사람이에요.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미래의 나한테 일을 떠넘긴 셈인데, 그 사람이 지금 계산서를 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나가기 싫은 건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남은 체력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이걸 구분 못 하면 괜히 사람한테 미안해집니다.
정답은 아니고 제가 쓰는 방법이에요.
저는 세 번째를 제일 좋아해요. 사람 만나기 전에 혼자 앉아 있는 30분이 완충 역할을 해주거든요. 저희 가게에 그런 분들이 은근히 많으세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무조건 나가시라는 쪽은 아니에요.
같은 사람과의 약속만 계속 미루게 되신다면, 그건 체력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요. 그 자리에서 계속 맞춰드리기만 하고 돌아오면 유난히 지치는 관계가 있잖아요. 몸이 먼저 알더라고요.
그건 나쁜 게 아니라 그냥 정보예요. 굳이 억지로 이겨내실 필요는 없어요.
약속 시간보다 한참 일찍 오셔서 혼자 앉아 계신 분이 있었어요. 아무것도 안 시키시길래 물을 갖다드렸어요.
나가시면서 그러시더라고요. 여기서 좀 앉았다 가야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요. 그날 표정이 들어오실 때랑 나가실 때가 완전히 달랐어요.
나가기 싫었는데 결국 나간 날, 그건 게으름을 이긴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거예요.
오늘 저녁에 약속 있으시면, 30분만 일찍 나와서 아무 데나 앉아 계셔보세요. 그 30분이 생각보다 많은 걸 바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