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객잔에 이런 손님이 늘었어. 문 열고 들어오면서 이미 뭘 시킬지 정해놓고 와. 차림표는 펴보지도 않아.
며칠 전에도 그랬어. 앉자마자 그거 하나 달라고 하길래, 처음 오신 것 같은데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미리 다 알아봤다고 하더라고.
옆 탁자 아저씨가 그 말을 듣고 웃었어. 요즘은 다들 그런다고. 어디를 가든 뭘 하든 미리 정해놓고 움직인다고 말이야.
계획을 많이 세우는 걸 두고 여유가 없다고들 하는데, 나는 좀 다르게 봐.
정해놓고 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대체로 비슷하거든. 시간이 아깝다는 거야. 저녁에 나올 수 있는 게 한 번인데 그걸 헛되이 쓰기 싫다는 거지.
그러니까 저건 소심한 게 아니라 한 번밖에 없어서 그런 거야. 여러 번 올 수 있으면 아무거나 시켜보지. 한 번이면 못 그래.
장사하는 사람 눈으로 보면 확실히 달라진 게 있어.
물어보는 게 줄었어. 예전엔 뭐가 괜찮냐고 묻는 손님이 많았거든. 그러면 나는 그날 좋은 걸 권했지. 근데 정해놓고 오면 그 대화가 아예 없어져.
그래서 요즘은 그날 제일 좋은 게 안 나가는 날도 있어. 아무도 안 물어봤으니까. 나는 이게 손님 손해라고 생각하는데, 말할 자리가 없더라고.
무협을 보면 이게 더 확실해. 강호 이야기는 거의 다 계획이 틀어지면서 시작하거든.
목적지를 정하고 떠났는데 길에서 사람을 만나잖아. 그 만남 때문에 목적지가 바뀌어. 그게 이 장르가 굴러가는 방식이야.
정해진 대로 다 되는 이야기는 사실 재미가 없어. 그런 건 여정이 아니라 일정이지. 좋은 작품일수록 처음에 세운 계획이 초반에 박살 나.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돼.
나도 다 정하지 말라는 소리는 못 해. 나부터 장 볼 때 목록 적어 가거든.
대신 나는 절반만 정해둬. 갈 데는 정하고 뭘 할지는 안 정하는 식으로. 그러면 안 틀어지면서도 뭔가 만날 자리는 남거든.
이야기 고를 때도 그래. 어떤 결로 갈지는 정하고, 어떤 게 나올지는 안 정하는 거야. 그 정도가 딱 좋더라고.
정해놓고 오는 게 잘못은 아니야. 다만 다 정해두면 그날 제일 좋은 걸 못 만나기도 해. 나는 그걸 여기서 자주 봐.
오늘은 어떤 결이 당기는지만 말해줘. 뭘 볼지는 내가 정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