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손님이 그러더라. 남한테 폐 끼치는 게 제일 싫다고. 요즘 다들 그렇대.
객잔에서 짐이 무거워 보이는 손님이 있었어. 들어주겠다니까 손을 한사코 내젓더라고.
결국 세 번에 나눠서 옮기더라. 시간은 세 배 걸렸고 얼굴은 더 힘들어 보였어. 근데 그 사람은 그게 편한 거야. 빚이 안 생기니까.
그거 보면서 좀 이상했어. 무협에서는 정확히 반대로 굴러가거든.
이 장르에서 인연이 시작되는 방식이 거의 정해져 있어. 누가 누구를 구해줘.
그리고 구해준 놈은 대개 이름을 안 대고 가버려. 구해진 놈은 그 빚을 갚으려고 평생을 찾아다녀. 이게 무협에서 제일 자주 나오는 관계의 뼈대야.
그러니까 무협에서 신세는 부채가 아니라 줄이야. 그 줄로 사람들이 엮여서 이야기가 굴러가는 거지.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신세를 지라는 건 아니야. 강호에도 규칙이 있어.
제일 무서운 게 갚을 수 없는 신세거든. 무협에서 목숨을 빚지고 나면 그놈은 그 뒤로 자유가 없어. 시키면 해야 해. 그게 나중에 비극으로 굴러가는 걸 이 장르가 수도 없이 보여줬어.
그래서 강호 사람들은 신세를 작게 여러 번 져. 밥 한 끼, 하룻밤 잠자리, 길 안내. 이 정도는 다음에 갚기 쉽거든. 갚고 나면 다시 지고, 그러다 보면 그게 인연이 돼.
객잔이 그래서 이야기의 무대인 거야. 여기가 작은 신세를 주고받는 자리라서.
무협 보면 이거 규칙처럼 나와. 아무한테도 안 기대는 인물은 오래 못 가.
강해서 안 기대는 게 아니라, 안 기대서 아무도 자기를 안 찾는 상태가 되거든. 그러다 진짜 위험할 때 부를 사람이 없어. 그 장면 몇 번 봤어.
거꾸로 여기저기 신세를 지고 다닌 놈은 결정적일 때 사람이 몰려와. 그게 이 장르가 말하는 강함이야. 무공이 아니라 부를 수 있는 이름의 수인 거지.
폐 끼치기 싫다는 마음이 나쁜 건 아니야. 나도 그래.
근데 그게 지나치면 아무도 나한테 뭘 부탁하지 않게 되더라. 신세는 한쪽으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서, 안 지면 못 받는 것도 같이 따라오거든.
다음에 짐 무거우면 한 번은 그냥 맡겨. 그러고 나중에 밥 한 번 사면 돼. 강호에서는 그렇게 사람을 만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