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관 방송이 나가도 창가 자리에서 안 일어나시는 분들이 있어요. 책은 안 펴고 창밖만 보시죠. 한 분은 나가시면서 그러시더군요. 여기 있으면 생각이 좀 작아진다고요.
불을 껐는데 머릿속만 환한 밤이 있습니다. 생각이 많아서 잠이 안 오는 게 아니라, 잠이 안 와서 생각이 커지는 것 같기도 하죠.
낮에는 같은 걱정이 일정 속에 눌려 있어요. 처리할 일이 많으니 걱정도 여러 조각 중 하나로 취급됩니다. 그런데 밤에는 비교 대상이 사라지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방 안에서는 걱정 하나가 전부의 크기를 가져가더군요.
그래서 밤에 내린 결론은 대체로 과장돼 있어요. 저는 새벽 두 시에 확신한 판단을 아침에 다시 보고 놀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같은 생각이 계속 돌아온다면 그건 답을 못 찾아서라기보다, 아직 자리를 못 잡아서인 경우가 많더군요. 머리는 끝나지 않은 것을 계속 꺼내 보이거든요.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것만이 밤새 너를 찾아온다.
그러니 밤의 과제는 답을 내는 게 아니라, 자리를 정해주는 일에 가깝습니다.
저는 잠이 안 오면 머리맡의 종이에 지금 도는 생각을 그대로 적어요. 해결하려 하지 않고 그냥 옮깁니다. 그리고 그 옆에 언제 다룰지만 적어두죠. 내일 오전, 이번 주말, 이런 식으로요.
이상하게도 언제 다룰지가 정해지면 그 생각은 물러나더군요. 머리는 잊어버릴까 봐 계속 꺼내 보이는 것이었으니까요.
생각이 많아 잠이 안 온다면, 오늘 밤 안에 결론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도는 생각을 적고, 다룰 시각만 정해서 덮어보세요.
밤은 결론을 내기에 나쁜 시간이지만, 재료를 모으기에는 좋은 시간이더군요. 어느 쪽으로 쓸지는 오늘 밤 내가 정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