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를 고르시던 손님이 봉지에 적힌 나라 이름을 하나씩 소리 내서 읽으셨어요. 그러다 발음하기 쉬운 걸로 고르셨대요.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에요. 그래도 뭐가 다른지는 알고 고르시면 좋잖아요. 오늘은 그 얘기를 해드릴게요.
커피나무는 자란 자리의 성질을 그대로 가져와요. 높이, 비, 흙, 볕이 다르면 열매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봉지에 적힌 나라 이름은 브랜드가 아니라 어디서 온 열매인지 적어둔 주소에 가까워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다르지만, 처음에는 나라 단위로만 잡아도 충분해요.
가게에서 손님들께 설명드릴 때 저는 이 정도로만 말씀드려요.
이건 대략이에요. 같은 나라라도 농장과 가공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져요. 그래도 방향을 잡는 데는 이 정도면 됩니다.
고르는 기준은 사실 하나면 돼요. 신맛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신맛이 좋으시면 위쪽 두 나라, 싫으시면 아래쪽 세 나라. 잘 모르겠으면 가운데인 콜롬비아나 과테말라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저도 처음 오신 손님께는 대개 그 둘 중 하나를 권해드려요.
봉지에 워시드, 내추럴 같은 말이 같이 적혀 있을 거예요. 이게 은근히 큽니다.
열매를 벗겨서 씻어 말린 게 워시드예요. 깔끔하고 결이 또렷해요. 열매째 말린 게 내추럴이고요. 과일 향이 진하고 단맛이 두껍게 나옵니다.
같은 에티오피아라도 이 둘은 꽤 달라요. 그러니까 나라 이름이 마음에 안 들었어도, 다른 방식으로 만든 걸 드시면 인상이 바뀔 수 있어요.
손님들이 가끔 미안해하세요. 마셔놓고 뭘 마셨는지 기억을 못 하시겠다고요.
그거 안 외우셔도 돼요. 저는 대신 좋았던 봉지를 사진으로 찍어두시라고 말씀드려요. 다음에 그 사진만 보여주시면 비슷한 걸 골라드릴 수 있거든요.
커피는 공부해서 좋아지는 게 아니에요. 좋았던 걸 기억할 방법만 하나 만들어두시면 충분해요.
한 가지만 마시면 그게 어떤 맛인지 잘 몰라요. 두 가지를 나란히 놓으면 그때 차이가 보입니다.
가게에서 두 가지를 조금씩 내려드릴 때가 있는데, 그때 손님들 표정이 제일 재밌어요. 아무 말씀 안 하시다가 갑자기 이거랑 저거가 다르다고 하세요. 그 순간이 시작이에요.
그 손님도 다음에 오시면 두 잔 내려드리려고요. 발음하기 쉬운 걸로 고르셨던 게 어느 쪽이었는지 저도 궁금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