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사람이 시킨 걸 그대로 따라 시키신 손님이 계셨어요. 자리에 앉으셔서는 한참을 안 드시더라고요.
나중에 여쭤보니 원래 드시던 게 아니었대요. 메뉴 이름을 모르겠어서 앞사람 걸 그냥 말했다고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좀 미안했어요. 물어보기 어려운 카운터를 제가 만든 거니까요.
몰라서 곤란한 게 아니에요. 대개는 모른다는 걸 남이 아는 게 곤란한 거죠.
메뉴 이름을 모르는 게 무슨 큰일이겠어요. 그런데 그 순간에는 뒤에 줄 선 사람도 있고, 카운터 사람도 나를 보고 있고, 다들 아는 걸 나만 모르는 상황이 되잖아요. 그 그림이 싫어서 아는 척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건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하루에도 수십 분이 오시는데, 메뉴를 정확히 알고 오시는 분은 생각보다 적어요.
산미가 뭔지, 블렌드가 뭔지, 왜 어떤 건 얼음이 따로 나오는지. 다들 대충 아시고 그냥 시키세요. 그러니까 모르는 게 나 혼자인 것 같은 그 느낌은 대체로 사실이 아니에요.
말 안 하는 쪽이 안 보이는 것뿐이에요.
문제는 아는 척을 하고 나면 되돌리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한 번 안다고 해버리면 다음에도 물어볼 수가 없어요. 그러면 그냥 계속 모르는 채로 지나가게 되죠. 물어보는 데 드는 값은 삼 초인데, 안 물어보고 아는 척하는 값은 그 뒤로 계속 나가더라고요.
저는 손님이 이거 뭐예요, 하고 물으실 때가 제일 편해요. 그때부터는 제가 뭘 드리면 될지가 정해지니까요.
그래도 그 한마디가 안 나오는 게 사람이잖아요. 그럴 땐 문장을 미리 정해두시면 편해요.
저 이거 처음인데요. 이 한마디면 대부분 풀립니다. 상대가 알아서 설명을 시작하거든요. 모른다는 말을 안 하고도 모른다는 게 전달되니까 부담도 덜하고요.
가게에서만 쓰는 말은 아니에요. 회사에서도, 처음 간 곳에서도 이 문장은 똑같이 돌아가더라고요.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릴게요. 누가 물어봐 주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분들도 같이 들어요.
카운터에서 한 분이 산미가 뭐냐고 물으시면, 뒤에 서 계시던 분이 아 그렇구나 하는 얼굴을 하세요. 물어본 사람이 자기 것만 챙긴 게 아니라 그 자리 전체를 도운 거예요.
오늘 다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자리에 계셨다면, 그건 대개 착각이에요. 그리고 착각이 아니었다 해도 물어본 쪽이 이기는 게임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