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걸어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저희 가게 손님 중에도 몇 분 계세요.
운동하려고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얘길 들어보니 아니더라고요.
퇴근하면 회사에서 바로 집이잖아요. 그 사이가 없어요.
문 열고 들어가는 순간 다시 다른 역할이 시작돼요. 부모거나 배우자거나, 아니면 혼자 사는 사람이라도 밀린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고요. 회사 얼굴에서 집 얼굴로 바로 갈아 끼워야 해요.
그 사이에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좀 필요한 거예요. 한 정거장이 딱 그 시간이더라고요. 10분에서 15분쯤이요.
카운터에서 들은 이유들이에요. 다들 조금씩 다르세요.
마지막 분이 제일 많아요. 이유를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하세요. 몸이 먼저 그렇게 하더라고요.
저는 가게 마감하고 바로 집에 안 가요. 셔터 내리고 한 바퀴 돌고 들어가요.
바로 들어가면 가게 생각이 계속 따라와요. 오늘 매출이 어땠고 내일 뭘 시켜야 하고요. 그런데 10분을 걸으면 그게 좀 뒤로 물러나요. 그러고 들어가면 집이 집으로 느껴져요.
이게 대단한 방법은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이거 없이는 잠이 잘 안 와요.
한 정거장 전에 내리신다는 분이 계셨어요. 비 오는 날에 우산을 쓰고 들어오시길래 오늘도 걸어오셨냐고 여쭤봤어요.
그렇다고 하시더라고요. 비 오는 날이 더 좋대요. 우산 안에 있으면 아무도 말을 안 걸어서요. 그 말이 저는 좀 오래 남았어요.
집에 가기 싫은 게 아니에요. 집에 잘 들어가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오늘 하루가 길었으면 한 정거장 먼저 내려보세요. 걷다가 불 켜진 데 있으면 들어오셔도 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