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한 분이 반납대에 책을 내려놓으면서 그러시더군요. 다 읽긴 읽었는데 뭐가 남았는지 모르겠다고요. 그런데 그 책은 표지에 손때가 묻어 있었고, 서른 장쯤에는 접힌 자국이 남아 있었어요. 분명히 끝까지 읽은 사람의 책이었습니다.
읽어도 남는 게 없다는 느낌은 대충 읽은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더군요. 오히려 성실하게 읽은 사람이 자주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읽은 게 남았다고 말할 때, 사실은 남에게 옮길 문장이 생겼는지를 묻고 있을 때가 많아요. 줄거리를 요약할 수 있는지, 한 줄로 정리해 말할 수 있는지 말이죠. 그건 남는 것의 한 종류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만 남는 것이라고 부르더군요.
정작 오래 남는 건 그런 요약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장면 앞에서 잠깐 멈췄던 감각,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바뀐 문장의 속도, 예전 같으면 그냥 넘겼을 말이 이번엔 걸렸다는 사실. 이런 건 인용이 안 되니까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피가 된 것은 더 이상 자기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이 말을 오래 곱씹었어요. 정말 내 것이 된 앎은 출처와 문장 형태를 잃고, 그냥 나의 판단처럼 굴게 된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책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그 책이 사라졌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만 이미 섞였다는 증거일 수도 있죠.
그래도 허전하다면 방법은 하나 있어요. 기억하려 애쓰는 대신, 한 번 써먹어 보는 겁니다. 오늘 어떤 결정 앞에서 그 책의 문장을 한 번 적용해 보는 거죠. 저는 그렇게 한 번이라도 써본 책만 이상하게 오래 남는 걸 봤습니다.
밑줄은 저장이고, 사용은 소화더군요. 저장만 잔뜩 해두면 나중에 찾을 수는 있어도 내 것이 되지는 않았어요.
읽어도 남는 게 없다고 느낀다면, 더 많이 읽어서 채우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읽은 것 중 딱 한 문장을 골라 하루 안에서 써보는 편이 훨씬 낫더군요.
남는 게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쓰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기억이 나를 남겨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오늘 한 번 써먹어서 내가 남기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