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 처마에 등이 하나 걸려 있는데 그게 넉 달째 같은 자리에 같은 색으로 걸려 있더라고.
나는 그거 보다가 문득 이상했어. 여기 온 지 꽤 됐는데 계절이 바뀌는 걸 못 느꼈거든. 그러고 보니 무협 읽을 때도 그랬어. 몇백 화를 봐도 지금이 몇 월인지 아무도 안 알려줘.
이게 좀 웃긴 지점이야. 무협에서 시간은 분명히 흘러. 삼 년 폐관수련도 하고, 십 년 뒤에 만나기도 하고.
근데 그게 덩어리로만 흘러. 삼 년이 지났다고 문장으로 알려줄 뿐이지, 그 삼 년 동안 눈이 왔다가 꽃이 폈다가 하는 건 안 나와.
시간은 세는데 계절은 안 세는 거야.
이유를 알고 나니까 간단하더라고. 계절을 쓰면 인물이 계절을 견뎌야 해.
겨울이 오면 춥고, 여행이 어려워지고, 먹을 게 줄어. 그럼 이야기가 그 문제를 다뤄야 하잖아. 근데 무협이 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거든. 무협은 만나서 붙고 다음 데로 가는 이야기야.
그래서 계절을 통째로 빼버려. 그러면 인물이 언제든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어. 계절이 없다는 건 제약이 없다는 뜻이야.
그렇다고 날씨가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야. 나오는데 쓰임새가 정해져 있어.
비 오는 날에 싸우면 그건 계절 얘기가 아니라 분위기 장치야. 눈 내리는 결투 장면도 마찬가지고. 그날이 겨울이라서 눈이 오는 게 아니라, 그 장면에 눈이 필요해서 오는 거지.
그러니까 무협의 날씨는 달력이 아니라 조명이야. 필요하면 켜고 안 필요하면 꺼.
나도 처음엔 이게 작가가 대충 쓴 건 줄 알았어. 근데 계절을 넣은 무협을 읽어보면 알아. 갑자기 이야기가 무거워지거든.
가끔 계절을 또박또박 쓰는 작품이 있어. 그런 건 십중팔구 신호야.
계절이 들어왔다는 건 그 이야기가 성장이나 늙음을 다루겠다는 뜻이거든. 봄이 몇 번 왔다 갔는지를 세기 시작하면 인물이 나이를 먹어. 그럼 강해지는 얘기가 아니라 저물어가는 얘기가 돼.
그러니까 계절이 나오면 좀 긴장하고 봐. 대개 거기서 그 작품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시작돼.
정리하면 이래. 무협은 시간을 쌓이는 것으로만 써. 내공처럼 모이는 거지.
계절은 반대야. 계절은 돌아오는 거고, 돌아온다는 건 결국 사람이 늙는다는 뜻이잖아. 무협은 그걸 안 보고 싶어 하는 장르라서 계절을 뺀 거라고 나는 봐.
다음에 무협 읽다가 지금이 몇 월인지 궁금해지면 그냥 넘겨. 아무도 안 정해놨거든. 근데 어느 작품이 갑자기 계절을 세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좀 다르게 읽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