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던 걸 반쯤 두고 새 걸 잡아. 그것도 반쯤 보다가 또 다른 걸 잡지. 그러다 보면 시작한 건 많은데 끝낸 게 없어.
이게 집중력 문제라고 자책하는 사람을 꽤 봤어. 근데 나는 좀 다르게 봐. 대개는 질려서가 아니거든.
첫째, 감정이 무거워서 잠깐 내려놓은 경우야. 복수가 시작되거나 사람이 죽는 대목에서 자주 그래.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그 무게를 감당할 상태가 아닌 거지.
둘째, 이름이 밀려서 막힌 경우야. 무협은 인물이 갑자기 열 명씩 늘어나는 구간이 있어. 거기서 머리가 정리를 못 하면 손이 자연히 다른 데로 가.
셋째, 진짜로 안 맞는 경우. 이건 소수야. 근데 이 경우를 앞의 둘이랑 같은 걸로 묶어버리니까 다 내 탓 같아지는 거라고.
나는 두세 편 벌여두는 걸 오히려 편하게 봐. 결이 다른 걸 같이 두면 그날 상태에 맞춰 고를 수 있잖아.
머리 복잡한 날엔 통쾌한 쪽, 조용한 밤엔 쓸쓸한 쪽. 이렇게 쓰면 벌여둔 게 짐이 아니라 서랍이 되지.
문제는 결이 비슷한 걸 여럿 벌여놓을 때야. 그러면 인물이랑 문파가 머릿속에서 서로 섞여. 이건 진짜로 피곤해지거든.
솔직히 말하면 벌여둔 것 전부를 끝낼 필요는 없어. 세 편 중 하나만 끝까지 가도 그건 잘 고른 거야.
나머지는 버린 게 아니라 나중에 잡을 자리에 둔 거고.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서 나는 마음이 훨씬 편해졌어.
읽는 게 숙제가 되는 순간부터 재미가 빠져나가잖아. 그거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지.
탁자가 어질러진 게 게을러서가 아니라 취향이 넓어서인 경우가 훨씬 많아. 나는 그렇게 보고 살아.
벌여둔 것 중에 뭘 먼저 잡을지 못 정하겠으면 말해줘. 결만 들으면 하나 골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