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가 딴생각이 들어서 같은 줄을 세 번 보는 거, 나도 자주 해.
이걸 집중력이 없다고 자책하는 사람을 봤어. 근데 나는 좀 다르게 봐. 무협은 원래 딴생각이 들게 생긴 장르거든.
이 장르는 사이사이가 넓어.
싸움이 붙기 전에 준비 구간이 길고, 이동하는 장면이 길고, 앉아서 술 마시는 대목이 길어. 그 구간에서는 사건이 급하게 안 굴러가. 그러면 눈은 글을 읽는데 머리에 자리가 좀 생기지.
그리고 무협은 인물이 감정을 말로 안 하잖아. 그러니까 독자가 대신 채워 넣게 돼. 저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일까 하고. 그게 딴생각처럼 느껴지는 거야.
내가 겪어보니까 이게 갈려.
하나는 이야기에서 아예 나가버리는 딴생각이야. 내일 할 일이 떠오르거나 아까 있었던 일이 생각나거나. 이건 그냥 피곤한 거야. 그럴 땐 덮는 게 나아.
다른 하나는 이야기 안에서 새는 딴생각이야. 저 사람이 왜 저기서 물러섰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건 새는 게 아니라 읽고 있는 거야. 오히려 이때 남는 게 제일 많더라고.
이건 좀 뻔한 소리인데 겪어보니까 맞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붙이는 이야기는 읽을 땐 시원한데 다 보고 나면 이상하게 아무것도 안 남아. 생각할 틈을 안 주니까 그냥 흘러가버리는 거지.
반대로 중간중간 멈추게 만드는 이야기는 다 보고 나서도 며칠 붙어 있어. 멈춘 자리에서 내가 뭔가를 얹었으니까 내 것이 좀 섞인 거잖아.
읽다가 자꾸 멈춰진다고 해서 재미없는 게 아니야.
객잔에서 이런 손님을 봤어. 한 대목에서 손을 멈추고 한참 창밖을 보다가 다시 같은 줄로 돌아오더라고. 그 사람은 그날 몇 장 못 봤어. 근데 다음에 왔을 때 그 대목 얘기를 아주 오래 하더라.
빨리 본 사람보다 그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간 거지.
물론 아무것도 안 들어오는 날도 있어. 그건 글 문제가 아니라 그날 문제야.
그럴 땐 나는 그냥 덮어. 억지로 밀어 넣은 건 어차피 다음 날 하나도 기억이 안 나거든. 이 장르는 도망 안 가니까 급할 게 없어.
딴생각이 드는 게 못 읽는 게 아니라 읽는 방식일 수도 있어. 나는 그렇게 보고 편해졌어.
읽고 나서 오래 남는 결이 취향이면 말해줘. 그런 쪽으로 골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