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을 한참 올려다보시던 손님이 결국 "그냥 아메리카노요" 하시면서 멋쩍게 웃으신 적이 있어요. 다른 게 궁금하긴 한데 실패하기 싫으셨던 거죠. 한 잔 값이 아까운 것도 있고요.
그 마음 저도 알아요. 그래서 오늘은 가게에서 제가 손님한테 물어보는 순서를 그대로 적어볼게요. 이 순서만 따라가면 크게 어긋나지 않거든요.
이게 제일 크게 갈리는 지점이에요.
우유가 들어가면 커피 맛이 부드러워지고 배가 든든해집니다. 대신 밥 먹은 뒤엔 더부룩하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지금 속이 비었는지 찼는지만 보시면 됩니다.
속이 비었으면 우유가 들어간 쪽, 밥 먹고 오셨으면 안 들어간 쪽. 이 한 번으로 메뉴판 절반이 지워져요.
이건 취향이 아니라 그날 컨디션 문제더라고요.
피곤한 날엔 평소에 안 먹던 단 걸 찾게 되잖아요. 그런 날 쓴 커피를 시키면 반쯤 남기시고요. 그래서 저는 얼굴이 지쳐 보이는 손님한텐 단맛 있는 쪽을 먼저 말씀드려요.
의외로 이게 결정적일 때가 있어요.
추운 날 손이 시려서 들어오신 분들은 아이스를 시켰다가 후회하시더라고요. 반대로 답답한 마음에 들어오신 분들은 차가운 걸 드셔야 좀 풀리고요.
마시고 싶은 맛보다, 손에 뭘 쥐고 있고 싶은지를 먼저 보세요. 이게 생각보다 잘 맞습니다.
이건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에요.
가게 하는 사람 입장에선 "뭐가 맛있어요?"가 제일 반가운 질문이거든요. 귀찮은 게 아니라, 그날 상태 좋은 걸 드릴 수 있는 기회니까요. 원두가 막 들어온 날도 있고, 오늘따라 잘 나오는 게 있는 날도 있어요.
그런 건 메뉴판에 안 적혀 있잖아요. 물어보셔야만 알 수 있어요.
메뉴판을 오래 보고 계시면 저는 재촉 안 해요. 고민하는 시간도 그 사람 시간이니까요.
늘 시키던 걸 시키는 게 나쁜 것도 아니에요. 하루 종일 고르고 정하느라 지쳤는데, 커피까지 고민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죠. 그런 날은 그냥 늘 마시던 걸 드시면 됩니다.
다만 오늘 조금 여유가 있으시면, 한 칸 옆으로만 가보세요. 실패해봐야 다음에 뭘 시킬지 알게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