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을 낀 채로 책을 반납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굳이 덧붙이셨어요. 이건 눈으로 읽은 거라고요.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 말이죠. 저는 그 한마디가 계속 걸렸습니다.
듣는 걸 읽기로 안 쳐준다는 생각이 어딘가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미리 해명하신 거죠. 그 손님만 그런 게 아니에요. 비슷한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뉴스에서도 듣는 독서가 늘었다는 얘기를 봤습니다. 늘어난 만큼 이 해명도 같이 늘어난 것 같더군요.
저는 어느 쪽이 진짜 독서인지 판정할 자리에 있지 않아요. 다만 대출대에서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습니다.
듣고 오신 분들은 줄거리를 잘 기억하시고, 눈으로 읽은 분들은 문장을 기억하시더군요. 어느 쪽이 낫다는 게 아니라 남는 부위가 다른 겁니다.
소리로 듣고 오신 분이 같은 책을 다시 빌려 가신 적도 있습니다. 문장을 확인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럴 때 듣기는 읽기의 반대가 아니라 입구였던 거죠.
귀로 들어온 것은 흘러가고, 눈이 멈춰 선 자리는 남는다. 둘 다 필요하다.
듣기는 계속 흘러갑니다. 멈추려면 손을 써야 하죠. 종이는 저절로 멈춰 있고요.
그래서 생각을 흔드는 책은 종이가 유리하고, 이야기를 따라가는 책은 소리가 편하더군요. 실제로 두 가지를 나눠 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눈이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듣는 쪽이 유일한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분들 앞에서 진짜 독서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죠. 저는 그 자리에서 그 사실을 배웠거든요.
걸어 다니는 시간에 듣고, 앉아 있는 시간에 눈으로 보는 분을 봤습니다. 그분은 해명을 안 하셨어요. 자기 방식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무엇이 진짜 독서인지는 남이 정해준 기준입니다.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흘려보낼지는 제가 정하죠. 그렇게 한 번 정해두면 굳이 덧붙일 말이 없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