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다 드시고 삼십 분 뒤에 냉장고 앞에 서 계셨다고 했습니다. 배가 부른 건 아셨는데도 문을 여셨지요.
그러면 그건 배고픔이 아닙니다. 다른 이름이 붙어야 합니다.
배고픔은 몸에서 올라옵니다. 신호가 서서히 커지고, 무엇을 먹든 가라앉습니다. 밥이든 국이든 상관이 없지요. 몸은 종류를 안 가립니다.
입이 심심한 것은 마음에서 옵니다. 갑자기 옵니다. 그리고 종류를 가립니다. 단것이 당길 때 밥을 먹어도 안 가라앉지요. 대상이 정해져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그래서 구별이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거나 괜찮으면 몸이고, 그것만 되면 마음입니다.
마음 쪽이면 대개 앞에 다른 일이 있었습니다. 애매하게 끝난 대화, 처리 못 한 감정, 하루 종일 눌러둔 긴장 같은 것들이지요.
그것들은 이름이 안 붙어 있으면 몸의 신호로 번역돼서 올라옵니다. 사람은 뭉근한 불편을 그대로 못 견디니까 아는 이름 중에 가장 가까운 것을 붙입니다. 배고픔은 아주 익숙한 이름이라 자주 선택됩니다.
그러니 냉장고 앞에 서 있는 것은 식탐이 아니라 번역 오류에 가깝습니다.
냉장고 문을 여시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시면 됩니다. 지금 사과 하나면 되겠습니까?
이건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름을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여쭙는 겁니다.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마음 쪽인 줄 알면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먹어도 됩니다.
다만 이름을 알고 먹으면 두 가지가 달라집니다. 먹고 나서 자책이 안 붙고, 원래 대상이 그 자리에 남습니다. 눌러둔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확인할 수 있는 상태로 남는 것이지요.
모르고 먹으면 반대가 됩니다. 먹었는데 안 풀리니까 더 먹게 되고, 나중에는 먹은 자기를 탓하게 됩니다. 정작 처음의 그 감정은 이름도 못 받은 채 그대로 있고요.
몸 쪽이면 할 일은 먹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마음 쪽이면 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늘 안 끝난 일 하나를 적는 것입니다. 다 해결하라는 게 아니라 이름만 붙이시면 됩니다. 이름이 붙으면 그 감정은 다른 신호로 번역될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밤에 뭔가 찾게 되시면 문을 열기 전에 한 번만 물어보시죠. 아무거나 괜찮습니까.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