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를 말할 자리에서 별것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겸손하다고 했지요. 그런데 집에 오셔서 그 말을 밤새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겸손이었으면 후회가 안 남습니다. 그건 위축이었습니다.
겸손은 내가 고른 자세입니다. 내가 한 일의 크기를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앞세우지 않기로 정한 것이지요. 크기를 아는 상태가 전제입니다. 모르면 겸손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위축은 눌려서 접힌 상태입니다. 고른 게 아니라 그렇게밖에 못 한 것입니다. 그 자리의 분위기나 사람 때문에 말이 안 나온 것이지요.
겉으로는 둘 다 자기를 낮춥니다. 그래서 밖에서는 구별이 안 됩니다. 안에서만 갈립니다.
겸손 뒤에는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고른 일이니까요. 고른 것에는 후회가 잘 안 붙습니다.
위축 뒤에는 후회가 남습니다. 그리고 대개 두 번째 감정이 따라옵니다. 그 자리에서 말 못 한 나에 대한 판정이지요. 그러면 손해가 두 겹이 됩니다. 인정도 못 받고 자기 평가도 깎이니까요.
그래서 이 구별은 나중에 확인하는 게 제일 정확합니다. 밤에 그 장면이 돌아오면 위축이었던 겁니다.
그때 그 자리를 두고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면 같은 말을 고르시겠습니까?
위축이었다고 해서 잘못한 게 아닙니다. 그 자리의 압력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니까요. 다만 이름을 겸손으로 붙여두면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지워집니다. 그러면 다음에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겠지요.
곤란한 자리가 하나 있습니다. 위축했는데 주변에서 겸손하다고 칭찬하는 경우입니다. 칭찬을 받으면 그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눌려 있는 상태가 미덕으로 굳습니다. 자기 몫을 말 못 하는 사람이 되고, 그게 성품으로 정리되지요. 이건 사람이 손해를 보는 방식 중에 가장 조용한 축에 듭니다.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자기 몫을 말하면 잘난 척이 될까 봐 못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을 말하는 것과 부풀리는 것은 다릅니다. 한 일을 한 대로 말하는 것은 잘난 척이 아니라 보고입니다.
겸손 쪽이면 할 일이 없습니다. 고른 것이니 그대로 두시면 됩니다.
위축 쪽이면 할 일은 성격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 한 문장을 미리 적어두는 것입니다. 내가 한 일을 한 줄로요. 그 자리에서 만들려 하면 압력 때문에 안 나옵니다. 미리 적어두면 읽기만 하면 되니까 눌려 있어도 나옵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밤에 돌아오는 장면이 있으시면 그건 고른 게 아니었을 겁니다. 다음 자리를 위해 한 줄만 적어두시죠.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