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kg 봉지를 사 가신 분이 석 달 뒤에 반쯤 남은 걸 들고 오셨어요. 맛이 이상해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원두가 상한 건 아니었어요. 다만 그 봉지를 처음 열었을 때랑은 확실히 다른 커피가 됐거든요. 오늘은 그 얘기예요.
가게에서 손님이 얼마나 사면 되냐고 물으시면 저는 되묻습니다. 하루에 몇 잔 드시냐고요.
한 잔에 원두를 몇 그램 쓰는지만 알면 계산이 금방 나오거든요. 보통은 이렇게 잡아요.
하루 한 잔 드시면 한 달에 450g쯤이에요. 200g 봉지는 보름이면 끝나고, 1kg 봉지는 두 달 넘게 갑니다.
여기가 핵심이에요. 원두는 볶은 날부터 계속 변하거든요.
봉지를 안 뜯었으면 그래도 천천히 갑니다. 그런데 한 번 열면 그때부터 공기가 들어가요. 열어둔 채로 두 달을 쓰면 마지막 잔은 처음 잔이랑 다른 커피예요. 나쁘게 변한다기보다 향이 먼저 빠지고 쓴맛만 남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한 달 안에 다 쓸 양으로 사시라고 말씀드려요. 앞서 말씀드린 계산이면 하루 한 잔 드시는 분은 500g, 두 잔 드시면 1kg 이 맞습니다.
값만 보면 큰 게 유리해요. 그건 맞습니다. 저희도 가게 쓸 건 큰 단위로 받고요.
다만 가게는 하루에 수십 잔이 나가니까 큰 봉지가 사흘이면 비거든요. 집은 사정이 다르죠. 싸게 산 만큼 뒤쪽 잔이 밍밍해지면 그건 아낀 게 아니게 돼요.
정 큰 걸 사고 싶으시면 방법이 하나 있어요. 받자마자 소분해서 나눠 담는 겁니다. 지금 쓸 것만 꺼내두고 나머지는 작게 나눠서 밀봉해두면 열어둔 시간이 그만큼 줄어요.
이건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갈아서 사신 거면 양을 확 줄이셔야 합니다.
통원두는 겉면만 공기랑 닿는데, 갈면 표면이 몇십 배로 늘어나거든요. 그만큼 향이 빨리 나갑니다. 갈아둔 걸 한 달 쓰는 건 통원두를 석 달 쓰는 거랑 비슷해요.
갈아서 사시는 분은 200g 정도씩 자주 사시는 게 낫습니다. 번거로워 보여도 마시는 잔이 확실히 달라져요.
집에서 내려 드시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제일 자주 하시는 실수가 큰 봉지를 덜컥 사시는 거예요.
아직 뭐가 맞는지 모르시잖아요. 신맛이 좋은지 묵직한 게 좋은지도 몇 봉지는 마셔봐야 알거든요. 그런데 1kg 을 사버리면 안 맞는 걸 두 달 동안 마셔야 해요. 그러면 대개 집에서 내리는 걸 그만두시게 되더라고요.
작은 걸로 서너 번 바꿔가며 사보시고, 아 이거다 싶은 게 나오면 그때 큰 걸로 가시면 됩니다.
석 달 된 원두를 들고 오신 그분한테는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향은 빠졌지만 못 마실 건 아니라고요.
우유를 섞어서 드시면 꽤 괜찮아집니다. 아니면 얼음 넣고 진하게 내려 드셔도 되고요. 향이 빠진 원두는 연하게 마실수록 티가 나니까 오히려 진하게 쓰는 쪽이 낫거든요.
저는 커피를 버리는 게 제일 아까워요. 누가 한참 걸려서 만든 거잖아요. 남은 게 있으시면 버리지 마시고 다음에 오실 때 물어보세요. 그 상태에 맞는 방법이 대개 하나쯤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