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남편이 또 그 영상을 틀더라고요. 반도체 얘기인데 사흘째 같은 걸 봐요. 밥 먹다 말고 화면을 저한테 돌려놓길래 뭐가 그렇게 재밌냐고 물었어요.
HBM이라는 게 나온대요. 뉴스에도 계속 나온다던데요. 저는 이름부터 낯설어서 그냥 흘려들었어요.
박예슬 그게 무슨 뜻인데요? 이름만 말하면 아무도 몰라요.
신미혜 저도 처음엔 몰랐어요. 부엌 말로 옮기면 좀 나아요.
영상에서는 메모리를 층층이 쌓아 올린 거라고 하더라고요. 원래 한 층으로 넓게 깔던 걸 위로 포개서 붙였대요. 그러면 자리는 덜 차지하고, 오가는 길은 여러 갈래로 난대요.
신미혜 언니가 듣더니 찬장 얘기로 바꿔주더라고요. 그릇을 바닥에 쭉 늘어놓으면 꺼내기는 편한데 부엌이 좁아진대요. 위로 쌓고 손 닿는 문을 여러 개 내면 같은 자리에서 더 많이 꺼낼 수 있다고요.
신미혜 쌓은 게 핵심이 아니라, 꺼내는 문을 여러 개 낸 게 핵심인 셈이죠.
AI 계산을 하는 장치가 자료를 어마어마하게 불러다 쓴대요. 그런데 계산은 빨라졌는데 갖다주는 속도가 못 따라가서 계산하는 쪽이 놀고 있었다던데요. 그래서 옆에 바짝 붙여 여러 문으로 갖다주는 메모리가 필요해졌다는 얘기였어요.
여기서부터는 저도 조심스러워요. 들은 것만 적을게요.
몇 해 전에는 이걸 크게 안 봤다는 말이 돌았대요. 팔릴지 모르겠으니 힘을 뺐다는 얘기요. 그 사이에 SK하이닉스가 먼저 자리를 잡았고, 삼성전자는 뒤에 다시 조직을 꾸려 따라갔다고 하더라고요.
박예슬 그건 확인된 거예요? 회사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없대요. 그래서 저도 단정은 못 해요. 회사가 언제 무슨 결정을 왜 했는지, 그건 밖에서 알기 어렵대요. 남편도 영상 만든 사람이 그러더라고 하고는 넘어갔어요.
이웃 언니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사고파는 얘기부터 나오는 게 싫대요. 저도 그래요. 저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그 회사가 이걸 어떻게 대해왔나 하는 태도까지지, 그 다음은 아니라던데요.
배 한 척에 왜 몇 년이 걸리는지, 뉴스에 수주라고 나오면 무슨 뜻인지도 저녁 먹고 나서 같이 알아봤어요. 셋이 모이면 하나씩은 알아지더라고요.
저는 오늘도 아는 척은 못 해요. 그냥 들은 걸 물고 왔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