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해 드린 책을 다음 주에 그대로 반납하고 가신 분이 있었습니다. 아무 말씀도 없으셨어요. 저는 그 침묵이 한참 남았습니다.
책을 골라달라는 말은 쉬워 보이는데, 실제로는 꽤 무거운 부탁이더군요.
무슨 책이 좋으냐는 질문에는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가 빠져 있으니까요.
같은 책도 지친 사람에게는 잔소리가 되고, 뭔가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손잡이가 됩니다. 그래서 고르기 전에 물어야 할 게 더 많죠.
제가 좋아하는 책을 그대로 건네면 대개 실패합니다. 그건 제 상태에 맞았던 책이거든요.
반대로 별생각 없이 꺼내 드린 얇은 책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좋은 책의 목록과 지금 이 사람에게 맞는 책의 목록은 겹치는 부분이 생각보다 작더군요.
사서에게 추천을 부탁하시는 분들은 대개 답을 원하는 게 아니더군요. 고르는 일을 잠깐 남에게 맡기고 싶은 겁니다. 그 마음도 저는 알겠어요.
남에게 길을 알려주려는 자는, 먼저 그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요즘 무엇 때문에 시간이 잘 안 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끝까지 읽은 책이 뭐였는지요. 두 가지면 대체로 방향이 잡힙니다.
끝까지 읽은 책은 그 사람이 실제로 견딜 수 있는 밀도를 알려줘요. 좋아한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라 실제로 넘긴 책이 기준입니다.
반대로 추천을 잘 받으시는 분들은 자기 얘기를 먼저 하십니다. 요즘 뭐가 힘들고 어떤 책에서 막혔는지요. 그러면 고르는 사람도 훨씬 정확해지거든요.
추천받은 책이 안 맞으면 미안해서 말을 못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침묵 때문에 다음 추천이 또 빗나가죠.
그러니 안 맞았다고 알려주시는 게 낫습니다. 어디서 걸렸는지 한마디만 있으면 다음이 훨씬 정확해지거든요.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는 결국 내가 알려줘야 만들어지는 목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