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갈아서 사셔도 됩니다. 대신 2주 안에 다 드시면 돼요.
카운터에서 제일 자주 듣는 질문이에요. 그라인더가 없으면 커피를 제대로 못 마시는 건가 하고 미안해하시는데, 전혀 아니에요.
원두를 통으로 두는 건 서랍을 다 닫아둔 것과 비슷해요. 갈아버리면 서랍을 전부 열어놓은 셈이 됩니다.
공기에 닿는 면이 갑자기 몇십 배로 늘어나거든요. 향이 먼저 빠지고, 그다음에 남은 게 쓴맛으로 읽혀요. 손님들이 "집에서 내리면 왜 쓰지" 하실 때 열에 예닐곱은 이 문제더라고요.
그러니까 갈아서 사는 게 틀린 게 아니라, 갈아둔 상태로 오래 두는 게 문제예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장비 권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가게에도 필요 없는 물건이 자꾸 쌓이는 게 싫어서요.
그라인더가 있으면 확실히 좋아요. 그건 맞아요. 그런데 그거 하나 사놓고 서랍에 넣어두신 분을 너무 많이 봤어요. 손으로 가는 건 생각보다 팔이 아프거든요.
그래서 저는 순서를 바꿔서 말씀드려요. 먼저 사는 양을 줄여보시고, 그래도 아쉬우면 그때 도구를 보시라고요.
카운터에서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맞춰드리는 것들이에요.
이 셋만 지키시면 갈아 가셔도 맛이 크게 안 떨어져요. 저도 집에서는 갈아둔 걸 씁니다. 퇴근하고 와서 손으로 갈 힘이 남아 있지 않거든요.
매주 같은 원두를 갈아 가시던 분이 있었어요. 어느 날부터 안 오시길래 다른 가게를 찾으셨나 했는데, 두 달 만에 오셔서 그러시더라고요. 쓴맛이 없어졌다고요.
그동안 뭘 하셨냐고 여쭤봤어요. 특별한 건 없고 그냥 사는 양을 반으로 줄이셨대요. 그게 다였어요.
도구가 맛을 바꾸는 건 마지막이에요. 그 앞에 양과 시간이 있어요.
집에서 내린 커피가 요즘 맘에 안 드셨다면, 오늘은 봉지 크기부터 한번 보세요. 그거 하나로 끝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