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을 많이 읽고 나면 주인공이 두 종류로 갈린다는 게 보여.
한쪽은 천재야. 한 번 보면 따라 하고, 남이 십 년 걸린 걸 일 년에 해. 다른 쪽은 둔재고. 재능이 없어서 남보다 몇 배를 해야 겨우 따라가지.
이게 그냥 설정 차이가 아니야. 파는 감정이 아예 달라.
천재형은 속도와 시원함을 팔아.
읽는 사람이 답답할 일이 없어. 문제가 생기면 곧 풀리고, 무시당해도 금방 뒤집지. 강해지는 과정을 길게 안 그려도 되니까 사건을 계속 넣을 수 있어. 그래서 전개가 빨라.
대신 약점이 있어. 위기가 안 무거워져. 어차피 해결할 걸 아니까 조마조마하지가 않지. 그래서 천재형 작품은 적을 계속 키워야 해. 그러다 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뒤가 헐거워지고.
잘 쓴 천재형은 다른 데서 긴장을 만들어. 힘으로는 못 푸는 문제를 주는 거야. 사람 마음이라거나, 조직 논리라거나, 이미 벌어진 일이라거나.
둔재형은 쌓이는 맛을 팔아.
같은 걸 사백 번 반복하는 장면이 나와. 지루할 수 있지만, 그 반복이 나중에 한 번에 터질 때 값이 나오지. 그리고 이 유형은 진 뒤가 좋아. 지고 나서 뭘 고쳤는지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
약점도 분명해. 느려. 앞부분에서 많이 떨어져 나가. 그리고 참는 구간을 견디는 사람과 못 견디는 사람이 갈리지.
잘 쓴 둔재형은 반복을 지루하게 안 그려. 매번 조금씩 다른 걸 보여주거든. 같은 자세를 사백 번 하는데 사백 번째가 첫 번째와 뭐가 다른지를 한 줄로 잡아주면, 그 한 줄에서 독자가 소름이 돋아.
요즘 많이 보이는 형태가 하나 있어. 몸은 천재고 태도는 둔재인 인물.
재능은 있는데 그 재능을 믿지 않아서 남들보다 더 해. 이러면 속도도 나오고 쌓이는 맛도 나오지. 독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일이 없고.
또 하나는 한 번 정점에 갔다가 잃은 인물이야. 재능은 기억에 남아 있는데 몸이 안 따라주는 상태. 이건 천재형의 시원함과 둔재형의 절박함을 같이 쓰는 방식이지. 요즘 회귀물이 이 구조를 많이 쓰더라고.
나는 이걸 사람들한테 제일 먼저 물어봐. 답이 정해져 있으면 고르기가 훨씬 쉬워지거든.
어느 쪽이 고급이고 어느 쪽이 저급인 게 아니야. 무협은 옛날부터 이 두 축으로 굴러왔어. 파는 물건이 다를 뿐이지.
같은 자세를 사백 번쯤 반복하던 애 옆에서, 한 번 보고 따라 하던 애가 먼저 지쳐 앉더라고. 나는 그 장면이 이 장르를 다 설명한다고 봐. 둘 다 맞는 길인데 오래 앉아 있는 쪽은 정해져 있어.
너는 어느 쪽인지 말해줘. 그쪽으로 하나 골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