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잊었다고 말씀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사십 분을 이야기하셨는데 그 사람 이름은 한 번도 안 나왔습니다.
대명사로만 부르셨습니다. 그 사람, 걔, 거기. 잊은 사람의 말투가 아니었습니다.
잊음은 기억이 흐려진 상태입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닙니다. 시간이 한 일이거나, 다른 일이 밀어낸 결과지요.
용서는 기억이 남아 있는 채로 하는 처리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누가 무엇을 했는지 알고, 그 위에서 청구를 그만두는 겁니다.
그러니 둘은 정도의 차이가 아닙니다. 재료부터 다릅니다. 잊음은 기억이 없어야 성립하고 용서는 기억이 있어야 성립합니다.
저는 이럴 때 한 가지를 여쭙습니다. 그 일을 지금 얼마나 자세히 말할 수 있습니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겉으로 비슷해 보입니다. 둘 다 기억이 선명하니까요. 갈리는 자리는 꺼낼 때 값을 치르느냐입니다.
잊으려고 애쓰신 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을 안 하려는데 더 난다는 겁니다.
당연합니다. 안 하려면 무엇을 안 할지 먼저 떠올려야 하니까요. 지우려는 동작 자체가 그 항목을 매일 꺼내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잊음을 목표로 잡으면 그 일이 오히려 굳습니다. 목표를 잘못 잡으신 겁니다. 잊음은 결과지 방법이 아니니까요.
여기서 자주 섞이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용서는 관계를 되돌리는 일이 아닙니다.
청구를 그만두는 것과 다시 만나는 것은 별개입니다. 갚으라고 요구하지 않겠다는 결정과, 그 사람을 다시 내 자리에 들이겠다는 결정은 서로 아무 상관이 없지요.
이 둘을 붙여두면 용서가 불가능해집니다. 용서하려면 다시 만나야 한다고 믿으니까 아예 시작을 못 하는 겁니다. 떼어놓으면 그때부터 선택지가 생깁니다.
세 가지로 갈립니다.
보류입니다. 아직 아무 결정도 안 하신 상태입니다. 대부분이 여기 계십니다. 잘못된 상태가 아닙니다.
억누름입니다. 안 그런 척하기로 정하신 겁니다. 잊었다고 말하는데 이름을 못 부르는 경우가 여기입니다.
용서입니다. 기억은 그대로 두고 청구만 접으신 상태입니다. 말할 수 있고, 말해도 값이 안 나갑니다.
억누름을 용서로 부르시면 문제가 생깁니다. 처리가 끝났다고 적어두고 덮으니까 다시 열어볼 기회가 없어집니다. 이름이 틀리면 다음에 할 일도 틀립니다.
그 일 때문에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그 사람 이름을 한 번 소리 내어 불러보시죠. 그것만 해보십시오.
불러도 아무렇지 않으면 용서 쪽에 이미 가 계신 겁니다. 목이 막히면 아직 처리 중인 것이고요. 그건 실패가 아니라 지금 어디쯤인지가 확인된 것뿐입니다.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 잊으려 애쓰는 대신 무엇을 청구하지 않을지를 정하는 쪽으로 옮겨가면 됩니다. 그 결정은 상대가 아니라 이쪽에서 내리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