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의 말이 나온 자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있었는데 반응이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팔짱을 끼고 상대를 봤습니다.
앞사람은 당황했고 뒷사람은 황당해했습니다. 글자가 뒤집힌 게 아니라 방향이 반대입니다.
당황은 내가 대처할 준비가 안 됐을 때 옵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왔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몸에 먼저 나타나죠. 말이 막히고, 손이 갈 데를 잃고,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여기서 판단의 대상은 나 자신입니다. 내가 지금 못 하고 있다는 인식이 중심에 있습니다.
황당은 다릅니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말이 안 된다고 볼 때 나옵니다.
여기서 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러서서 상대를 봅니다. 저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는 자리죠. 그래서 황당함에는 대개 약간의 거리와 냉정함이 섞여 있습니다.
판단의 대상이 상대입니다. 이게 두 말을 가르는 축입니다.
지금 어떤 말을 듣고 마음이 이상하다면 이렇게 물어보시죠. 못 하고 있는 게 나입니까, 이상한 게 저 사람입니까?
여기서부터가 실제로 쓰이는 대목입니다.
당황했을 때 필요한 건 시간입니다. 준비가 안 된 것이지 틀린 게 아니니까요. 그 자리에서 바로 답하려 하면 대개 나중에 후회할 말이 나옵니다. 잠깐 생각해보겠다는 한마디가 이 상황의 정답입니다.
황당했을 때 필요한 건 확인입니다. 상대가 말이 안 된다고 이미 판정을 내렸으니, 그 판정이 맞는지 물어야 합니다. 지금 무슨 뜻으로 하신 말인지 되묻는 것 하나로 절반은 오해로 밝혀집니다.
시간이 필요한 자리에서 따지고, 확인이 필요한 자리에서 얼어붙는 것. 이게 이름을 잘못 붙였을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실제로는 함께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가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했는데 나도 대처를 못 하는 상황이죠.
이때 사람은 대개 황당함 쪽을 먼저 꺼냅니다. 상대를 이상한 사람으로 두는 편이 내가 못 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난히 황당해했던 자리를 나중에 돌아보면, 사실은 당황했던 자리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조금 공정해집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예상 밖의 말을 들으셨다면 하나만 확인해보시죠. 흔들린 게 나였습니까, 아니면 저쪽이 이상했습니까.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