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을 넘겨 보여주시던 손님이 있었어요. 화면을 쓸어 올리는데 넉 달 치가 통째로 비어 있더라고요.
본인도 그때 알아차리셨어요. 뭐 이렇게 안 찍었지, 하시면서요.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볼게요.
그 넉 달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잖아요. 밥도 드시고 출근도 하시고 사람도 만나셨어요.
다만 그걸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 안 든 거예요. 사진은 원래 남기고 싶을 때 찍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안 찍은 건 무뎌진 게 아니라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잠깐 자리를 비운 거예요.
새로 시작한 일은 다 찍게 돼요. 저도 가게 열고 첫 몇 달은 매일 찍었어요.
간판, 첫 손님, 처음 만든 메뉴, 비 오는 날 창밖. 지금 보면 비슷비슷한 사진이 수백 장이에요.
지금은 거의 안 찍어요. 그렇다고 가게가 시시해진 게 아니에요. 익숙해지면 눈이 사진을 안 거치고 그냥 봐요. 그게 나쁜 일은 아니거든요.
익숙해진 것들은 사라질 때 티가 안 나요.
늘 앉던 자리, 늘 쓰던 컵, 매일 지나던 골목. 그런 건 없어지고 나서야 사진이 없다는 걸 알게 돼요. 저도 가게 앞 나무가 잘리고 나서 그 나무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요즘은 아무 일 없는 날을 한 장씩 찍어둬요.
반대 얘기도 해드릴게요.
기록하는 게 부담이 될 때가 있어요. 오늘 하루를 남길 만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고, 남길 게 없으면 못 산 것 같고요. 그럴 땐 안 찍는 게 맞아요.
넉 달을 안 찍으신 건 어쩌면 그 넉 달을 그냥 지나가게 두신 거예요. 그것도 방법이에요. 모든 날을 붙잡아둬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안 찍은 날들도 지나가긴 했어요. 사진이 없다고 없던 날이 되는 건 아니에요.
억지로 시작하실 필요는 없고요. 저는 이렇게 해요.
잘 나오게 찍으려고 하지 않아요. 흔들려도 그냥 둡니다. 잘 찍으려고 하면 그때부터 일이 되거든요. 오늘 뭘 봤는지만 남기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 손님은 계산하시고 나가시면서 창가를 한 장 찍으셨어요. 별거 아닌 사진이었는데, 넉 달 만이라고 하시니까 저도 좀 좋았어요.
오늘도 찍고 싶은 게 없으셨으면 안 찍으셔도 돼요. 대신 여기 오셨던 건 제가 기억하고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