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에서 어떤 손님이 그 인물 얘기가 나오자 좋아했었다고 하더라고. 과거형이었어. 그러고는 잔을 내려놓았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중간에 한 짓 때문에 못 보겠더래. 거기서 덮었다고 하더라.
나는 이 마음 알아. 나도 그런 적 있거든.
이 장르는 인물을 일부러 흔들어.
정파 사람이 사파 방식을 쓰거나, 은혜 입은 사람을 버리거나, 지키겠다던 걸 못 지키거나. 이런 대목이 꼭 나와. 그것도 대개 우리가 정을 붙인 뒤에 나오지.
그게 못돼서가 아니야. 협이라는 걸 시험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서 그래. 지킬 만한 상황에서 지키는 건 아무것도 증명이 안 되잖아. 못 지킬 상황이 와야 그 사람이 뭔지 나오거든.
이건 이해한다고 안 아픈 게 아니야. 나도 알면서 화났어.
그럴 땐 억지로 참고 읽을 필요 없다고 생각해. 화난 채로 읽으면 그다음부터 뭘 해도 밉게 보이거든. 그러면 작품이 손해지.
며칠 두는 게 나아. 그러고 나서 다시 잡으면 그 장면이 좀 다르게 보이기도 해. 그때도 여전히 밉다면 그건 진짜로 잘못 쓰인 거고.
여기서 작품이 갈려. 나는 이걸로 재기도 해.
못 쓴 쪽은 인물을 그냥 나쁘게 만들어. 앞에서 쌓은 게 없는데 갑자기 딴사람이 되지. 그러면 독자는 배신당한 기분만 남아.
잘 쓴 쪽은 미리 깔아둬. 그 사람이 예전에 비슷한 자리에서 어떻게 했는지, 뭘 제일 무서워하는지가 앞에 있거든. 그래서 그 장면이 오면 아프긴 한데 말은 되는 거야.
그러니까 실망스러운 장면이 나오면 나는 앞을 뒤져봐. 깔아둔 게 있으면 그건 잘 쓴 거야.
반대로 아무도 안 흔들리는 작품도 있어. 착한 사람은 끝까지 착하고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쁘고.
읽기는 편해. 근데 남는 게 별로 없더라고. 사람이 안 변하면 관계도 안 변하잖아. 그러면 뒤로 갈수록 다 아는 얘기가 돼.
나는 그래서 흔들리는 인물이 있는 쪽을 더 쳐. 보는 동안은 좀 괴로워도.
정 붙인 인물이 실망시켰다고 해서 잘못 고른 게 아니야. 오히려 정이 붙었다는 게 그 작품이 잘한 거지.
그리고 그 인물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까지는 한번 봐줄 만해. 무협은 무너진 사람을 다시 세우는 얘기를 꽤 잘하거든. 물론 안 세우는 작품도 있고, 그건 그것대로 하나의 답이야.
실망하는 자리가 이야기의 알맹이인 경우가 많아. 아프긴 한데 거기가 제일 값나가는 데더라고.
인물이 흔들리는 결을 견딜 만하면 말해줘. 그런 쪽으로 골라줄게.